마셰코 생애 첫 지원 그리고 탈락 by 고선생

마스터셰프코리아 라는 프로그램은 분명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한창 붐이 일던 때에 난 독일에 있기도 했거니와 나중엔 직장인인 상태였다. 내가 분명 음식을 대강 할 줄은 알아도 그건 내 만족에 하는 것일 뿐 실력으로 남과 겨루거나 할 승부욕이 있는것도 아니고 굳이 경쟁하는 곳에 나가서 평가를 받는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아마추어들이 모여 경쟁한다지만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운 사람도 있는데 굳이 그런 준 프로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마셰코1이 큰 화제와 함께 종영했을 무렵부터 시즌 2,3 시작때마다 내 블로그엔 비밀댓글로 여기 나가보라는 이웃님들의 권유를 숱하게 받기도 했지만 내가 나갈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흘려넘길 뿐이었다.
그러던 차, 시즌4가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관심가지고 찾아본 건 아니고 이 역시 어느 이웃분의 비밀댓글로 제보를 받아 마셰코의 개최소식 그리고 지원자 모집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정말 고선생님 정도면 경쟁력 있어요, 분명 어느 레벨까지 올라가실 수 있어요 라는 비행기 태움은 황송했지만 이번엔 그 소식을 알게 되고 나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상(국내거주, 직장인 아님) 지원해보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겠구나 싶긴 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거, 지원해보는게 뭐 어려울까 싶어 시즌4 지원자 모집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수많은 기재사항 빼곡히 채워가며 온라인 지원을 마쳤다.

그러고선 사실 잊고 지냈다. 어차피 별 연락 안 오면 서류에서 떨어진거겠지. 근데.. 어느 날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걸려온 전화. 언제나처럼 고객전화겠거니 하고 받았는데, "안녕하세요 올리브TV입니다!" ...아, 연락이 온 것이다. 마셰코 제작진에서.
그리고 서류 통과를 알리며 2단계인 전화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15~20분 정도의 문답통화. 정신없이 지나간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뭔가 멍했다. '어라, 연락이 왔네..? 나한테?' 그리고 이후 3단계인 면접 대상자가 될 시 따로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한다.

방송작가와 전화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 경험이라 신기하긴 했는데, 그래 그럴 수 있어 뭐 독일 살다왔네, 요리블로거했네, 책도 냈네.. 스토리상 흥밋거리 있는 지원자였겠지, 한번 인터뷰 구미가 당기는 대상자긴 했겠지.. 하며 그 다음은 그닥 기대하지 않고 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촬영하러 나가는 차 안에서 운전중 걸려온 또 모르는 번호의 전화. 다시 한번 올리브TV였다. 이번엔 면접 통보다. 몇월 몇일 몇시까지 방송국으로 와라 라는.. 헐.. 진짜? 면접을 보라고? 설마하니 최종단계까지 갈 줄은. 그리고 재차 문자로 통보된 상세내용. 이쯤 되니까 살짝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긴 했다. 이러다 진짜 본선 오르는거 아냐..?
요리오디션답게 면접때는 필요한 준비사항이 있었다. 바로, 자신있는 요리를 하나 해 오라고. 결론적으로 난 제목대로 탈락했지만 그 탈락요인으로 유력시되는 이유가 바로 이 요리에 있었다. 그 얘긴 이따 하기로 하고.. 암튼 뭔가 이 면접을 위해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거나 연구할 생각보다는 내 손에 충분히 익어서 자신있게 잘 만들 수 있고 맛도 보장되는 그러한, 내가 이미 만들었었던 음식 중 하나를 떠올렸다.

블로그 상에는 2012년에 포스팅했었던 바로 이 동남아풍 미트볼 야채수프. 유학시절 따끈한 국물이 당기던 계절엔 곧잘 해먹었던 맛있는 국물이 일품인 수프다. 구하기 쉬운 재료에, 국물내기도 간단하고 중량감도 있어 식사로도 그만이다. 계절에 따른 적합성, 맛볼 사람들을 위한 따끈한 배려까지 고려한 메뉴 선택. 그래도 귀국하고서는 만든지 꽤 되는 음식이라 한번 시뮬레이션으로 한 차례 선조리 해본 후 맛을 확인한 후, 면접 전날 밤 미흡한 부분도 보완하고 해서 좀더 완벽을 기한 수프를 만들었다.

제작진에서 요구한건 일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아 올 것. 용기는 반납이 안 되니까 일회용으로 아예 제출하라고. 일회용 용기를 준비하는건 어려운게 아닌데 내가 만든 음식 특성상 중요한건 보온이었다. 보온용기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맛을 유지할 것인가.
그래서 차에 냄비와 버너를 함께 싣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를 한 뒤, 트렁크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식은 수프를 따끈하게 끓여서 용기에 담아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래.. 먹는 이를 배려한, 나로서는 굉장힌 준비와 노력이었다.

방송국은 신기했다. 같은 시간대에 면접을 보기로 한 다른 지원자들과 조를 이뤄서 작가의 인도에 따라 방송국 내부로 들어갔고 이러저러한 테스트, 질문지 등 작성 후에 준비한 요리를 내오란다. 사진을 찍겠다고.

아니 근데.. 분명 일회용 용기에 담아오면 된다 했는데 다른 지원자들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누가 봐도 일회용이 아닌 제대로 된 그릇에 모양을 내가며 담아내고 있다니. 말 그대로 일회용 용기에 담아온, 다시말해 볼품없이 담아온 이는 나 뿐이었다. 내심, 뭐 어때 맛이 중요하지.. 오버들 하고 앉았네 싶었다. 근데 아마 나의 탈락은 여기서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음식 촬영 후 최종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 PD 그리고 심사위원중 한 명인 셰프가 나란히 앉아 면접을 진행했다. 편한 분위기에서 별 부담없이 진행되었고 면접을 마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방송국을 나왔다. 그렇게 나의 면접은 끝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준비해간 음식은 맛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괄적으로 찍은 사진으로만 평가했다고..
그래 난 삽질을 한 것이다. 먹는 이를 위해 음식의 온도를 사수하고 모양새가 아닌 오로지 맛을 위한 용기의 선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비주얼이었다. 뚜껑 닫힌 볼품없는 용기에 건더기도 흐릿하게 보이는 수프 따위가 비주얼은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서야 허탈했지만.. 내가 너무 순진했던건가 싶다. 하긴 그 수많은 지원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어떻게 다 맛을 보겠나 싶긴 해도.. 그렇게 최선을 다한 나의 맛지킴 노력은 무참히 외면당했단 건 조금 씁쓸했다. 결국은 비주얼이었다니. 그럼 어차피 음식 비주열로 블로그에서 반응 얻곤 했던 내 주특기가 그건데..ㅋ

탈락요인이 그것뿐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그것도 큰 퍼센테이지일 것이다. 아 그래서 다들 오버하면서 맛이고 뭐고 떠나서 모양새에 목숨걸었던거구나.. 아마도 이전 시즌 도전 유경험자들도 상당수일거고 말이다. 초연하다 라고 말해도 이렇게 탈락요인 분석하고 앉았는건 그래도 살짝 미련이 있다는 증거. 별 기대없이 지원한거긴 하지만 그래도 본선 진출 문턱까지 올려보내줬으니까. 이것도 거기서 얼마나 잘하나 못하나에 관계없이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 되겠다 싶어 지원한거긴 해도.. 아, 그래서 그걸 간파당한걸까. 생업 다 포기하고 여기에 올인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난 그런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던건가.

합격했다라는 전화는 없었다. 홈페이지 진출자 명단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어쨋든 그렇게.. 나의 첫 마셰코 도전 그리고 탈락으로 이어진 한달여였다. 앞으로도 지원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냐, 삐진건 아냐. 진짜야.




덧글

  • 2016/02/12 18: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15 21: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Centigrade 2016/02/12 20:28 #

    햄버거를 만들어서 가셨어야....
  • 고선생 2016/02/15 21:01 #

    햄버거..는, 엄밀히 '요리실력'을 가늠하기에 적합한 음식 같진 않네요 ㅎㅎ
  • 2016/02/12 20: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15 21: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emilla 2016/02/12 21:04 #

    ... 룰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네요...
  • 고선생 2016/02/15 21:03 #

    뭐.. 그렇다고, 반드시 일회용 용기에 담아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는건 아니었으니까요. ㅎ
  • 늄늄시아 2016/02/12 23:22 #

    헉.... 맛 심사는 하지 않았다니..
    너무 황당하네요. -ㅁ-;; 저도 지인이 거기 지원해보라고 그랬었는데 안하길 잘한것 같아요.
  • 고선생 2016/02/15 21:04 #

    어째 보온이고 뭐고 그냥 보기에만 좋게 장식해가며 담아내고 있더라구요.ㅎ 일회용 용기 지참자는 단연코 저 뿐.
  • 순수한 산타클로스 2016/02/13 16:04 #

    불공평해요~ 다른 사람들은 룰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통과하고.. 뭐죠..
  • 고선생 2016/02/15 21:06 #

    그게 룰이.. 그릇 안 돌려줄거니까 일회용 용기에 담아오는걸 권한다는거지, 일회용 용기에만 담아오란건 아니었으니까요..ㅎ 전 무조건 맛본단 전제하에 맛을 사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론적으로 시식은 없었고 중요한건 비주얼 뿐이었다 하니 그게 좀 허무했던거죠. 애초에 시식용이 아니고 사진찍을 용도다 라는걸 공지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네요~
  • 2016/02/15 10: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15 2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따뜻한 허스키 2016/02/16 05:00 #

    정말 너무해요ㅡㅅㅡ그런 허울뿐인 말 싫어요ㅡㅡ 에잇!! 다른 프로 나가셔서 흥 해버리믄 되요!!
  • 고선생 2016/02/16 13:28 #

    ㅋㅋㅋㅋ 제가 어디 다른 프로 나가겠어요~ 그냥 하는 일이나 잘 되면 좋겠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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