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으며 사람 입맛이 바뀌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맛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게 된 걸까.
내 인생 최초의 마카롱과 만남은 2010년, 벨기에 여행 당시였다. 내가 이 당시에 PAUL을 들른 것은, 디저트에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던 나의 귀에까지 슬슬 들려오던 프랑스식 디저트들의 이야기였고 그건 2000년도 중반 이후 국내에서 급속도로 규모가 커지게 된 정통 프랑스식 디저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행보(?)를 같이 한다. 독일 유학중이던 당시였지만, 그런 음식들과 훨씬 가까운 환경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거의 섭취해본 적 없고 관심도 없었던 내가 한국의 소식에 의해 디저트니, 마카롱이니, 유명한 프랑스 파티셰리 등을 알게 된 건 지금 생각하면 어지간히도 무관심했구나 싶기도 하다. 블로그를 하면서 슬슬 여기저기서 프랑스 디저트들 얘기가 나오게 되고 프랑스의 파티셰리 브랜드들이 한국에 진출했단 얘기가 나오게 되고.. 난 오히려 그러한 한국의 소식들을 듣고 저 PAUL이란 곳도 알게 된 셈이다. 독일 바로 옆나라에 수두룩한 매장 이름을 한국을 통해 듣게 되었다고.ㅋㅋ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마카롱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 아니, 꽤 먹을만한 것이 이젠 좋아져버렸다는 거.
나의 블로그를 최소 2년 이상 들러주신 분이라면 알고 있을 사실, 난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except chocolate)
그렇게 경계없이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해보자며 난리난리부르스를 춰댔었지만 단 한가지 영역, 디저트나 베이킹은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고 굳이 그 영역까지 진출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가끔가다 땡길 때가 있어도 맛으로 정평이 난 곳에서 사먹으면 되고, 그 디저트의 심오함을 내가 어줍잖이 만들어서 재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굳이 만들어서까지 나만의 디저트를 즐기고픈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은 없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집밥을 만들며 느끼는 점인데, 집밥 만드는 비용이 사먹는 비용 대비 그리 싸지도 않으며,
각 재료들의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디저트류를 직접 만들어봐야 돈은 돈대로 들면서 맛도 덜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단 한가지, 초콜렛. 그 마성의 단맛은 단맛을 싫어하는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으로, 유일하게 즐기는 단 음식이다. 다른 단 음식, 디저트같은걸 아예 금식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즐기는건 아니다'. 능동적으로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게 아니라 함께 디저트를 먹는 자리 같은데서라면 그냥 빼지 않고 한 두 입 먹는 정도?
다만 촤클릿은 내가 먹고싶어서 먹는 유일한 디저트인 것이다.
그런 내가 마카롱이 좋아질 줄은. 심지어 블로그에서도 몇 번이고 밣혔다. 나는 마카롱이 싫다고!

PAUL이 한국에 상륙되었다는 소식은 당시엔 상당히 큰 이슈로 통했었다. 지금이야 워낙에 많은 브랜드들이 들어와 성업중이지만. PAUL이 한국에 들어왔단 소식 이후에야 난 본대륙의 PAUL을 가보게 되었다. 희한한 케이스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그 등잔 밑은 영원히 암흑인거지.
확실히 그러고보면 한국 디저트계의 판도가 근 10년새에 많이도 바뀐 것 같다. 내가 독일로 떠나기 전인 2007년 전에는, 아 물론 그때도 프랑스 디저트가 있기야 있었겠으나 대중적인 인기는 프랑스보다는 미국식, 이탈리아식에 더 치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탈리아의 티라미수는 2000년대 초중반에 국내에서 대단히 인기있었고(물론 지금도), 벨기에의 와플은 비록 제대로 하는 곳은 드물었어도 많은 카페에서 볼 수 있었으며, 던킨도넛을 뛰어넘는 엄청난 인기로 줄서서까지 먹었던 크리스피크림 도넛 등,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대중적 인기의 디저트들은 그런 정도였다. 다른것들이 없었다는게 아니라 대중적으로 널리들 퍼지진 않았었으며 이름들도 생소했다. 뭐 이제는 마카롱은 동네빵집에서도 팔 정도이며 옆나라 일본의 롤케잌도 명물이라고 들어오는데다가 하다못해 독일의 특정지역에서만 파는 슈네발까지 들어온 한국이다.(슈네발은 비록 '시티폰'마냥 초음속으로 반짝인기였던 모양이지만) 선택의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여지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아졌고 다양한 관심은 다양한 것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저의 첫 마카롱 경험담은 이 글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http://masksj.egloos.com/2667460)
(갑자기 존댓말 모드)
마카롱.. 마카롱.. 특히 그 당시에 참 많이 들어본 디저트 이름입니다. 이 때쯤 마카롱이 대두되면서 저도 난생 처음 알게 된 디저트죠. 마카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프랑스 디저트 중에 최고라고, 너무 맛있다고 하는 평이 지배적.. 벨기에에서 PAUL이 보여서 들어가게 되고 마카롱을 주문한 것은 그러한 분위기에 의한 호기심 때문인거지, 좋아해서는 아니죠.
보통 한국에서 많이들 먹는 마카롱은 자그마한 한입크기가 주류인 것 같은데 여기서 집어든 마카롱은 사진처럼 상당히 거대했습니다. 거의 초코파이에 필적하는 크기였죠. 이왕 처음 맛보는 마카롱이니 큰 놈으로 음미하자 하고 집어든 마카롱의 첫 맛은.. 어휴 너무너무너무너무!!! 달더라구요.. 안 그래도 단 맛을 싫어하는 제가 이건 심하게 달다 싶게 느껴질 정도로 과하게 달았어요. 초콜렛 계열의 단 맛도 아니고요. 게다가 가운데는 기분나쁘게 찐득찐득! 삼킬때마다 너무 달아서 목구멍이 피곤할 정도였는데 돈 아낀답시고 커피 한잔 안 시키고 초코파이만한 마카롱을 꾸역꾸역 먹는 기분은, 그래도 음식 남기는건 못 할 짓이라고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참 돈 내고 고생한다 싶었지 말입니다. 아니 이게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마카롱인거야?? 어지간히들 단 맛에 빠져 사는 사람들인가봐! 마카롱이 무려 '고급디저트'로 통하는 이 세상이 미워졌습니다. 평양마카롱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로다.
그 이후로 마카롱은 제가 먹을 음식이 못 되는걸로 결론짓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관심두지도 않게 되었지비라. 이건 마치 청소년땐 공부는 그냥 그래도 모범생 코스프레하고 살던 제가 20살이 되어서야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게 된 때야말로 맘 놓고 담배 한번 피워보겠다고 기세좋게 흡입했다가 질색팔색을 하고 다시는 담배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 것과 비슷한 경험..
인생최초의 마카롱 시식이 2010년이었으니 그 후로 4년간 쭉 마카롱은 머릿속에서 비워내고 살았지요. 마카롱 따위 필요없다. 언젠가 마카오 여행이나 가야지. 그러고보니 보드마카 바꿔야 되는데.(그만해)


그러던 어느날. 요근래. 한국에서 우연찮게 처음으로 마카롱을 다시 맛보게 되었지요. 어머니가 어디선가 받아왔다며 꺼내신 건 아티제라는 파티셰리의 마카롱. 아티제.. 아티제.. 아티제?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shotguy?Redirect=Log&logNo=130097281861
어릴 때 아티스 아동화를 참 좋아했는데.. 엄마가 안 사줌..
..이 아니고! 여튼 귀에 익은 이름입니다. artisee. 온라인에서도 심심찮게 접한 이름. 디저트 좋아하고 빵과자 좋아하는 분들은 즐겨찾기 매장인가봐요. 방문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받아온 마카롱 선물로 처음 접해보죠. 뭔가 '나 좀 고급이거등??' 하고 강하게 주장하는 듯한 청담동 포스의 각 잡힌 고급스런 포장은 야.. 이거 돈 주고 사먹으려면 한두푼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포장을 열어보니 한입크기로 올망졸망하게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색색의 마카롱이 가지런히 누워있네요. 모양은 호감! 하지만 다시금 4년전 마카롱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먹어볼 생각은 안 했는데.. 그래도 한 입이라 부담없고 왠지 맛이 여러가지라서 살짝 궁금해지기도 해서.. 무려 4년만에 다시 입속에 마카롱 출입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어 그런데.. 괜찮아요. 그렇게 미친듯이 달지가 않아요! 뭐지? 이 견딜만한 단 맛은? 디저트같은걸 먹는다면, 달지만 단맛이 전방배치가 아니고 다른 고소함이나 그런 맛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면서 단맛도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그런 단맛(뭔소린지)..을 좋아하거든요. 강하게 달지 않은 에끌레어나 슈크림계열이 그래서 그나마 좋아할 수 있는 디저트류입니다. 4년전 벨기에에서 먹은 마카롱은 쓰디쓴 커피와 함께 하지 않으면 상쇄될 것 같지 않은 강력한 단맛에 학을 뗐는데 이번에 먹은 마카롱은 그냥 기분좋게 별미로 입에 넣을만하다~ 요런 느낌이구려!
저도 모르게 두 개를 먹었답니다. 연달아서 두 개를 먹다니. 아니 그럼 그 때의 마카롱은 뭐지? 현지에서는 더욱 달게 만들고 한국에선 좀 약하게 만드는건지, PAUL의 마카롱이 유독 단 것인지, 아니면 마카롱의 맛의 종류가 여러가진데 제가 그 때 먹었던건 유독 단 맛이 강한 맛이었던건지. 어찌됐든 이번에 아티제를 통해 먹어본 마카롱은 좋았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 먹고싶다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앉은 자리에서 마카롱 70개를 먹어치웠단 얘기가 나오지만 절대 그 정도는 아니구요. 초콜렛 외의 단맛 디저트에 시큰둥했던 제가 거부감없이 먹을 수 있는 디저트다 라는 생각.
(다시 반말)
찾아보니까 마카롱 가격이 만만찮다. '고급'이라고 하는데. 고급값은 하는가보다. 가끔 나도 소녀감성에 휩싸이곤 한다. 큰 의미없이 이쁘장한 카페에 오후에 가서 차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는게 좋을 때도 있고 평소엔 쳐다도 안 보던 디저트가 갑자기 생각날 때도 있다. 사실 식욕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것과 모두 함께 하는 그 세팅된 이미지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다. 이젠 마카롱도 먹게 된 시점에, 전처럼 돈도 못 벌던 때에는 맛있다 해도 사먹긴 거부감이 있었을테지만 이젠 돈도 벌고 가끔은 이런 허영심은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생 때는 그런 스타일로는 던킨도너츠에서 커피 한잔에 먼치킨 3개 정도 곁들이곤 했는데(당시 이병헌이 던킨도너츠 광고를 하기도 해서) 이제는 어느 주말에 어반스럽게 차려입고 외출하여 어느 조용한 골목 안에 있는 멋지구리한 디저트카페에 들어가 오후햇살 채광 좋은 자리에 앉아서 에스프레소에 마카롱 두개 정도의 여유를 꿈꿔본다.
오래살고 볼 일이다. 내가 마카롱이 '그래도' 좋아질 줄은.
덧글
커피가 정말 아무맛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아서 진저리를 칠 정도였네요.
단걸 싫어하는 편이 아닌데도 미치게 달아! 라고 정의가 내려지니 다시 사먹진 않게 된거 같아요.
역시 뭐든 첫경험은 중요한거 군요.
그러고보니 처음 현미녹차를 마셨던때도 그랬네요. 너무 써서 입에만 슬쩍 대고 안 마셨는데, 지금은 에스프레소 더블샷도 마시고, 아무것도 넣지않은 홍차도 잘만 마십니다. 대학 다니면서 제가 한약같다는 이유로 캔커피나 자판기 커피조차도 안마시던걸 기억하는 친구는 경악하더라구요. --;;;;;
"어른이 되는 겁니다."
ㅎㅎ
라뒤레도 이름 느낌이 왠지 프랑스 브랜드 같은데 여럿 분들이 언급해주시네요. 나중에 기회 되면 맛보렵니다.
라뒤레는 프랑스 브랜드 맞아요 그곳 마카롱 중에 과일필링 들어가는건 뭔가 젤리의 쫀쫀함과 말캉함이 혼재되있어서 굉장히 맛있더군요
전 처음 먹어본 마카롱이 스타벅스에서 나온 놈이었습니다. 지금은 망하고 없는 여수 엑스포에서 일할때 먹게 되었는데 결국 그거덕에 다시 살이 붙더ㄷ군요 orz
저는 저 위 사진의 거대한 마카롱...... 저런거시이 매우 좋습니다! 솔직히 저런거 하나만 좀 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가격으로 말이죠. 저런걸 국내에서 저크기로 산다.....? 면 2만원은 뭐야 하지 않을까요.....
역시 제 기억속의 가성비 갑인 마카롱은 스타벅스에서 팔았던 그 마카롱입니다....
비쥬 드 파리라고 엄청 럭셜럭셜한 패키지에 포장되어 있네요.
윗분이 언급하신 레프레미스 마카롱 !!!!
도곡동에 있는데 기회되시면 꼭 드셔보세요 !!
사실 전 스타벅스 피스타치오 마카롱도 참 좋아해요 :)
진짜 사랑받는 음식인가봐요. 찾아다니면서 먹을 정도의 애정은 아직 없지만 기회되면 맛보고 싶네요 :)
하지만 전 둘다 안좋아합니다-ㅁ- 차라리 먹어야 한다면 아주 뇌까지 녹아버릴 거 같은 파리 마카롱들을 먹겠지만... 그건 고문이잖아요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 살려주세염ㅋㅋㅋ
마카롱이 좋아졌다 했지만 막 좋아서 늘 생각나고 먹고싶고 하는건 절대 아니구요. 원체 디저트류 자체에 크게 호감도 없는 입맛이다보니~ 그냥 이젠 거부감은 없고 먹을때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