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의 일본인은 좋겠다 by 고선생

보통 다른 나라에 있는 어느 나라의 '타운'은 자기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 진출한 현지 교포들이 뭉쳐 살기 위해 모여 조성한 하나의 구락인 경우가 많다.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 이런 '타운'들이 자국보다 못한 나라에 형성된 경우는 별로 없다. 여러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아마도 더 잘 사는 나라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지 않기 위해 서로 뭉치기 시작한게 그 첫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타운들은 현지 거주 교포들에겐 안정된 터전이 되고 힘이 되고 자국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며 동시에 그 나라의 하나의 명물지역이 되기도 한다. 현지인들에게는 그 타운들에서 자신의 나라와는 다른 분위기와 외국을 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이국적 요소들과 문화들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

차이나타운은 전세계 선진국 소리 좀 듣는 나라에선 꽤나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코리아타운 역시도 가장 코리아다운 LA의 타운을 비롯해 뉴욕,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 등 여기저기에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에선 세계적으로 차이나, 코리아에 비해 흔히 보긴 힘든 일본인 구역이 있다. 독일의 신오쿠보같은 느낌? 독일에서 유독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 뒤셀도르프의 Oststraße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 지역이 바로 그 곳이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재팬타운'이라 할 만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사업적으로 이 도시에 일본이 꽤나 진출해 있고 이주민들도 많으며 뒤셀도르프시 차원에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알고 있다. 그렇게 일본인들은 이 곳에 많이 모여들었고 타운도 조성이 되어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일본인과 일본 상점, 식당들이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르게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 전에 여러번 이 곳 식당 방문했던 이야기도 올렸었고. 일본의 고급호텔인 hotel nilkko도 유일하게 독일에선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다.

난 운 좋게도(?) 이 뒤셀도르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사는 덕택에 접근성이 용이해서 꽤 자주 뒤셀도르프를 방문하는 편이다. 그 주목적은 식료품을 구하거나 일본음식을 먹으러 가는 정도의 이유다. 분당 살면서 서울 나가서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거나 서울의 맛집에 들러서 외식하고 오는, 뭐 그런 셈이다. 이 곳에서 사는 식료품은 단연 한국 또는 일본 음식용 식재료들. 재팬타운답게 아주 제대로 된 일본 식료품점을 비롯해 한국 식료품점도 크게 여기저기 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볼 일이다. 수요가 많을수록 퀄리티는 올라간다. 또한 일본스타일의 빵집도 있는데, 이 곳의 존재는 아주 특별하다. 독일이니까 빵 구하는건 너무 쉽지만 가끔씩 일본 스타일의 부드러운 식빵, 아기자기한 캐주얼 빵 등이 땡기기도 하는데 빵의 패러다임이 아예 다른 독일의 빵집에선 볼 수가 없지만 이 곳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한국의 빵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는것으로, 한국의 빵이 일본의 제빵 스타일을 고스란히 들여와서 발전된 것처럼, 특히 난 딴건 몰라도 일본 스타일의 식빵은 독일에서 대체할 빵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것 같다. 반죽의 차이겠지만 독일의 식빵은 일본식빵처럼 그렇게 많이 반죽을 하지 않아서 부드럽고 쫄깃하기가 덜한듯. 고로케, 야키소바빵, 메론빵, 크림빵, 앙꼬빵 등은 내가 그리 즐기진 않지만 보는것만으로도 너무나 일본 현지 그대로인듯 잘 해놨다.
늘 지나치기만 했지 한번도 들러보지 않은 이 곳을 들어가보았다. 이름은 재팬스토어. 단순무식하지만 모든것을 포괄한듯한 경파한 이름이다. 왠지 간판에서부터 일본 느낌이 나는것이, 독일의 간판과도 다른 스타일이고 폰트도 독일에서 잘 쓰지 않는 폰트다.
그리고 이 곳에 들어갔을 땐.. 마치 일본의 어느 상점에 들어왔나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안은 일본 그대로였다. 대부분의 손님은 일본인이고(간혹 독일사람 한두명) 직원들도 일본인이며 일본말로 인사하고 일본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비단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의 상점을 꾸며논 분위기 때문에 더 그렇다. 구성물이야 상점 이름처럼 100% 일본 제품들이기도 하지만 뭔가 안의 인테리어 느낌이 일본의 그냥 어느 상점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학용품 코너. 소싯적엔 참 세상 어떤 학용품보다 최고급이라고 생각했던 일제 학용품들. 샤프 하나, 지우개 하나도 모나미보단 일제를 써주면 더 뽀대난다고 생각했던 시절. 그 후 펜과 만화용품 등을 알게 되면서 더 좀 짱인듯 이라고 생각했던 일제 학용품들. 이제 와서는 학용품같은걸 쓸 일이 별로 없고 살 일도 없지만 괜시리 어릴때 생각나며 하나쯤 집어들고 싶은 충동도.
그 옆엔 온갖 잡화들이 판다. 특히 눈에 띄었던것은 일본 대표우산(?) 투명우산! 현지에선 싸구려 우산의 대명사라고 한다지만 난 이 투명우산이 참 좋다.
벤또도 판다. 벤또의 종주국답게 다양한 형태의 벤또들이 많다. 아이들용 캐릭터벤또부터 맨 위에 재밌었던건 무려 돈부리용 벤또! 커다란 보울형 벤또에 밥을 담고 위에 이것저것 올린 덮밥으로 만들어서 손잡이 달린 뚜껑으로 덮는식. 딱 일본다운 상품이랄까.
다양한 주방용품, 생필품들도 즐비하다. 죄다 일본에서 들여온, 모두 일본제품들이다. 여기까지 봤을 땐 난 한국으로 치면 다이소같은 느낌의 잡화점인줄 알았다(다이소의 가게컨셉도 일본서 들여왔겠지만). 물론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이소가 대부분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고 이 곳보다 훨씬 다양한 물건들을 취급하는데에 반해 여기는 그보단 범위가 좁고 가격도 싸지만은 않다는 것.
간단하게나마 식품코너도 한 켠에 있다. 물론 주류코너는 그냥 간단해보이진 않는다. 맥주를 비롯해 사케 등 일본술들이 보기좋게 횡대로 늘어서 진열되어 있다. 독일에선 와인셀러같은데가 아니면 이런 열맞춰 진열은 보기 힘들다. 그냥 빽빽하게 세워뒀을 뿐.
소스, 양념류, 즉석식품, 인스턴트 등도 즐비하다. 이런 것들이야 보관도 용이하고 취급도 쉽겠지.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이 곳이 다이소계열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서적 코너의 존재였다. 물론 이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잡지들이 눈에 띄었지만 잡지야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책 종류의 깊이감도 깊어진다. 이 곳은 작은 책장으로 되어 있는데, 일서가 아니라 일서를 독어로 번역한 책들이 모여있다. 일문학에 관심있는 독일인이라면 작가별로 일목요연하게 모여있는 이 곳이 편리할 듯.
잡화들을 지나 뒷편으로는 완전 서점 느낌으로 쭈욱 들어간다. 이 곳은 이미 서점. 꽤나 본격적으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여기는 일반서적 코너.
슬슬 더더욱 일본색 짙은 느낌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이 너무나 익숙하고 반가운 분위기는 지금보다 10살도 더 어렸던 나는 열광했던 그 분위기??
그렇다 만화책 코너. 그리고 만화 관련 굳즈와 애니 설정집, 화보집 요런것들.
그냥 일본 서점을 이리로 옮겨놓았다. 진열스타일도 완전 그쪽이다. 이 분위기는 한국 서점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것이, 이 분위기만으로 참 반갑기도 했다. 특히 독일에서도 일본의 '망가'(한국이나 일본에선 야한 만화의 의미로 통하는 것 같지만 독일에서 망가는 '일본의 만화'라는 뜻)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독어로 번역된 일본만화책들이 즐비했는데 독일 한복판에서 직수입 일본만화 그것도 밀봉판들이 즐비하다니. 아앗.. 리얼이 벌써 12권까지 나왔어? 내가 모으기 끊긴게 몇권까지더라. 기억도 안나네.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못 읽겠지만 이런 주의나 안내문구도 독어보단 일어 위주로 써 있다.
만화 종류별로 제목으로 칸막이 해논거. 이거 오랜만에 보네! 2002년 일본여행 이후로.
이런 상품이 나온줄은 이번에 여기 가보고야 알았다. 드래곤볼 완전판 이후로 또 무슨 버전이 나올 수 있겠어? 이름마저 '완전판'인데.. 하며 다 모았던 내 책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른 버전의 드래곤볼이 나왔다! 나온지 얼마 안 됐는지 신상코너에 있던데.. 무려 올컬러버전이다. 정말 드래곤볼이란 만화.. 대단하다. 완결난지도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그나저나 이거 한국에 정발될까? 무지 땡기는데..
한참 일본만화 원서구경에 빠져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두둥! 그래 일본가게인데 이런게 빠지면 쓰나. 여긴 일본이야!
피규어도 빠지면 쓰나. 여긴 진짜 일본이야!
피규어까진 그렇다치고 조금더 자질구레한 굳즈들도 참 이거저거 많이 들여다 판다. 과연 독일 최대의 일본인 거주도시답달까? 이렇게 자세하게 여러가지 품목을 현지 못지 않은 분위기로 팔고 있다는건 그러한 수요도 있다는 반증이잖아?

이 가게를 둘러보고 느낀 점. "뒤셀도르프의 일본인은 좋겠다!" 현지분위기 쏙 빼온 가게에, 취급하는 품목들도 엄청 다양.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러한 '한국 가게'는 본 일이 없다. LA의 코리아타운 가면 있겠지? 물론 독일서 살면서 독일에 적응해 살아가는건 당연하지만 가끔 그래도 본국의 이것저것이 그립거나 할 때가 있다. 여기 사람들은 참 그런면에선 훨씬 사정이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투어 이후 마무리는 길 건너 있는, 무슨 신주쿠 한복판에 있을것 같은 라멘집. 100% 일본인 운영. 100% 일본의 맛. 어설프지 않은 그 진미가 참 좋아서 여기 올 때마다 자주 찾는 곳이다. 미소라멘 B세트를 시켰다. 딸려나온건 데리야키 닭고기구이와 밥 한 공기.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구운 닭고기에 곁들여 나온 큐피마요를 찍어먹으며 미소 한번, 미소라멘을 국물까지 안 남기고 밥까지 말아서 흡입한 후 염화미소 한번.




덧글

  • 2013/03/01 06: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02 05: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02 05: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02 05: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핑크히카 2013/03/01 07:07 #

    재팬 타운이라니 신기해요. 정말이지 일본을 작게 축소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 고선생 2013/03/02 05:04 #

    일본 어딘가 상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재현도에요 ㅎ
  • 시은비 2013/03/01 21:30 # 삭제

    폐점 세일이라니...아쉽네요.
  • 고선생 2013/03/02 05:04 #

    아 어딘가에 폐점세일이라 써있는 모양이죠? 일본어를 몰라서..
  • 잠본이 2013/03/02 12:28 #

    첫번째 사진에 토끼인형 옆 배너에 '3/1부터 폐점 감사 세일 개최!'라고 되어있군요. 이런 아쉬울 데가...
  • 고선생 2013/03/03 19:11 #

    여기 일본인들 아쉬워하겠군요..
  • gene 2013/03/02 05:00 #

    일본에서도 망가는 그냥 만화에요
    한국에서만 그런 뜻으로 쓸 뿐...
  • 고선생 2013/03/02 05:04 #

    그렇군요...
  • 잠본이 2013/03/02 12:29 #

    주의문구는 뭐 별건 아니고 우리 서점에서도 흔히 보는 '책을 래핑한 비닐을 뜯지 마시오' 입니다.
    어딜 가나 뜯는 놈들이 있는 모양...OTL
  • 고선생 2013/03/03 19:10 #

    비율이 많다 적다의 차이 뿐, 어디든 없지 않겠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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