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음식. 냉동군만두와 스크램블에그 by 고선생

각자에게 추억의 음식이 각각 있을거고 그 추억은 여러가지겠지만 나에게 한가지 추억으로 남아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냉동 군만두와 스크램블에그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이다.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인지라 초등학교 방과후 집에 오면 부모님 퇴근 전까지 할머니 댁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는 당시 우리가족과 같은 아파트의 1층에 살고 계셨다. 우리는 10층. 그래서 어디 딴데로 갈 필요도 없이 집에 돌아오며 들르기 좋은 위치였다.

아무도 없이 텅 빈 집보다 할머니 댁에 가 있으라는건 홀로 적적하신 할머니의 상대도 되어드리고 출출하면 할머니가 음식도 해주시곤 하니 여러모로 좋은 일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내가 배가 고프다 하면 늘 고정적으로 해주시던 음식이 있었다. 라면. 계란 넣고 끓인 라면. 그 라면은 왠지 할머니가 끓여주신 그 맛은 앞으로도 다시 경험 못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바로 냉동군만두 구이와 스크램블에그. 특히 난 이 조합을 너무나 좋아해서 잘 먹어서 할머니가 언젠가부턴 늘 냉장고에 군만두를 구비해두셨던 것 같다. 방문할 때마다 군만두는 떨어지지 않았던걸 보니.

어린시절 할머니 댁에서 군만두를 가장 많이 먹었던 것 같고 거기다 군만두뿐이면 허전하다고 계란도 두어알 깨서 휘휘 저어 간단한 스크램블을 해서 곁들여 내주셨다. 맛있다 맛있다 하며 냠냠 먹고 있는 모습이 할머니에게도 보람이 있었던것일까, 이후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배고프냐? 물으시곤 말없이 군만두와 계란을 꺼내셨다.

사실 난 어려서부터 할머니와의 추억은 그리 많지 않다. 찾아뵐 때도 살가움보단 어색함도 많이 느꼈다. 울 할머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할머니와의 추억.. 그런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정 많고 푸근한 그런 분이 아니셨다. 다사다난하게 살아오신 당신의 인생처럼 강인하고 단단하며 정을 그다지 쉽게 내비추는 분이 아니였다. 속정까지 캐치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에 표면만 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니 할머니에게 쉽게 다가가 안기지도 못하고 형식적인 인사 후에 방에 들어가 내 할 일 하기에만 몰두했다.

아마도 그 시절이 유일했던 것 같다. 방과 후 할머니 댁에 들러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군만두를 집어먹던 그 시절이. 그제서야 난 조금은 할머니의 강한 겉모습과 행동들 이면에 감춰진, 하지만 표현이 서투르기 그지 없던 따스한 속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여전히 그 시절 먹었던 군만두와 계란이 가장 먼저 추억되고 그 때문인지 냉동군만두와 스크램블에그는 할머니와의 추억 가득한 나만의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오랜만에 냉동군만두 사와서 굽고 계란을 스크램블 해서 먹었다. 분명한건 그 때 할머니가 해주신 그 맛까지는 아니라는 것. 냉동식품인데도 만드는 이에 따라 맛은 이리도 달라진다.

할머니는 내가 유학에 한창이던 2009년 겨울에 하늘로 떠나셨다. 난 그분의 임종도 지킬 수 없었고 더군다나 한창 내가 여행중인 때에 돌아가셔서 소식도 여행 갔다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그 나이 되서까지도 어색함이 남아있던 할머니였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단 소식에 머리속이 텅 비어버리는 듯 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더 몇년이 지나서.. 새삼 떠오르는 할머니 생각에 아시아식품점에서 사온 삼립군만두와 계란을 구워 접시에 담아 그 시절처럼 포크로 먹으면서.. 괜히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잠시 나는 1991년 당시로 돌아갔다.




덧글

  • 리에르 2012/08/28 17:33 #

    추억은 소박할수록 멋있는거 같아요ㅠ 저희 할머니는 지금 제 본가에 같이 살고 계신데요. 제 막내동생들에게 시장다녀오실때마다 순대를 사주세요. 경상도분이고 혼자 아들을 키워내셔서 조금 세고 ,무뚝뚝하신 성격인데다가, 애들도 어려서 그런 거 딱히 그리 맛있지도 않을텐데 할머니가 사주시면 좋다고 달려들어 먹던 모습이 기억나요. 저도 담에 내려가면 할머니한테 순대 사달라고 졸라볼까봐요.
  • 고선생 2012/08/29 01:55 #

    언젠가 리에르님도 할머니가 사주셨던 순대가 추억의 페이지로 장식될 날이 오겠지요. 그 때까지 할머니께 효도하시고 좋은 시간 많이많이 보내세요^^
  • 만두럽어 2012/08/28 17:45 # 삭제

    고선생님 만두는 안빚어드시나요
    만두한번빚어주세요
  • KRISTINE 2012/08/28 22:14 #

    진짜 만두한번 빚어주세요!!!!! 기숙사 사셔서 애매하신거에요??
  • 고선생 2012/08/29 01:54 #

  • 2012/08/28 22:1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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