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영풍문고 강남점 by 고선생

팝 전문방송 디제이 배철수님은 음원파일이 득세한 요즘 시대에도 레코드판을 고집하며 방송에서도 손수 레코드판을 가지고 와 음악을 틀곤 한다고 한다. 클릭 한번으로 손쉽게 음악을 재생하는게 편해진 시대지만 그가 구시대의 방식을 고수하는건 고집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그냥 자기한테 익숙하고 그게 편해서 라는 이유라고 한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으로 구입하지 못할 물건이 없어진 시대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어떤 품목을 막론하고 20세기 대비 매출은 감소하고 있고 그 감소된 매출은 고스란히 인터넷 쇼핑몰의 차지다. 인건비가 필요없고 중간마진이 많이 빠지니 소비자권장가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여기저기서 남발되는 할인쿠폰까지 합해지면 오프라인보다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의 메리트가 크다. 물론 직접 눈으로 상품을 확인하고 손으로 집어들어 바로 구매해야 확실한 상품도 더러 있지만 그거야 초창기 때 얘기고 요즘은 인터넷 쇼핑은 충분히 기존 유통업체들을 대신하고도 남을 정도로 메리트가 커졌다.

인터넷 쇼핑몰의 편리함과 가격적 매력 등은 알고도 남는다. 그것은 분명 바뀌어가는 시대의 흐름이고 대세이며 그 인터넷서점 이상의 메리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면 오프라인 매장들은 도태되어버리는게 세상 이치다. 다만 앞서 배철수님의 예를 든 것 처럼 난 여전히 뭘 사든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는게 훨씬 편하다. 물론 몸을 직접 움직여야 하는 수고는 들지만 그게 훨씬 내게 익숙하고 마음이 편하다. 난 그런류의 인간이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하고 더 편한 체제가 만들어져도 기존에 고수하던 옛 방식이 아예 사라져버려서 이용할 수조차 없는게 아닌 이상, 세상이 암만 이게 편해 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도 난 내가 익숙한것이 최고다.

얼마전에 홍대의 리치몬드 과자점이 사라졌을 때 인터넷에서 시끌시끌햇던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이들이 아쉽다, 추억이 사라진다, 대기업의 횡포다 등등을 운운할 때 한쪽에서는 그 매장을 즐겨 이용했던 고객이 아니라면 매출에 도움도 안 준 사람들이 모호하게 그냥 없어진다고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라고 반박하고 거기에 또 골난 사람들은 거기에 또 반박하고 하면서 시끌시끌했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전엔 비슷한 위치에 있던 레코드집인 레코드포럼이 사라졌다. 사라진건 아니고 위치를 이전한거긴 한거지만 더 이상 볼 수 있는 그 곳은 아니다.
뭐 어느쪽이든 사정이 있고 일리는 있는 얘기다. 사실상 매출이 안 되니까 망해버리는건 시장논리인건 분명하니 그닥 고객 행세도 안 했으면서 막상 없어진다니까 랜드마크 운운하며 섭섭해하는것도 냉정히 이치에는 맞지 않는 일이고 그래도 한 곳에서 오래 있고 늘 봐왔던 익숙한 것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니 헛헛하다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요번에 날 아주 실망시키는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으니, 바로 영풍문고 강남 센트럴시티점이 사라진다는 것. 17일부로 영업을 종료했으니 이미 사라진 후다.

앞서 말한대로 난 물건을 사는 행위는 왠만해선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는게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고 그게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쇼핑습관에 의한 편함이기도, 하나의 개인적인 로망이기도 하다.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어 훑어보고 그 살짝의 시간 동안 내 체온이 배인 그 것을 그대로 내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게 뭐냐 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내 개인적인 작은 로망이다. 난 지금까지 인터넷 쇼핑몰에서 책을 주문해본 적이 5번 미만이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단 3번 뿐일텐데 10년 이상 동안 기억이 살짝 흐릿해질 수도 있으므로 단정은 못하겠다. 다만 확실한건 5번 미만이라는 것. 그 외에는 모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다. 오프라인 서점의 가격이 더 비싸다는것, 온라인서점이 더 싸고 배송도 빨리 해준다는것 다 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먼저 훑어보고 정작 구입은 온라인서점에서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실제로 Yes24의 광고포인트는 그거였다. 교보문고에서 책 일단 보고 사는건 Yes24에서 사라고. 강남역 지하에서 봤던 광고판.) 그래도 난 인터넷서점이 익숙하지 않았고 어찌됐든 주문 후 기다려야 하는것도 맘에 들지 않고, 바로 카운터에서 돈 내고 내 손에 들어올 수 있는, 그래서 귀가하자마자 바로 비닐 뜯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게 가능한 오프라인 구입이 좋았다. 앞서 말한대로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내가 편하니까.

2000년 고속터미널 옆에 센트럴시티가 개장하고 동시에 영풍문고도 함께 생기면서 난 지금껏 산 책의 대부분을 그 영풍문고에서 샀다. 앞서 말한 5번 미만의 인터넷서점 구입 외에는 거의 대부분 영풍문고에서 구입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난 그 서점을 참 많이도 이용했다. 내게 영풍문고는 '훌륭한 거대한 동네서점'이였던 것이다. 어디 나갈때마다 집에서 걸어나와 고속터미널 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게 되면 꼭 보게 되는 영풍문고. 거의 내 생활권의 일부였다. 그렇게 오며가며 늘 서점에 들렀고 신간을 확인하고 내가 모으는 책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사고, 공부에 필요한 책도 사고, 취미서도 사고 만화책도 사고. 스무살이 된 2000년부터 거의 모든 책은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산거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난 충분히 섭섭해할 자격이 있다. 별로 이용도 안 했으면서 감성에 떠밀려 섭섭해하는게 아니다. 십여년을 동네서점으로 이용해온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그 곳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것은 굉장히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다. '책 따위'야 이미 인터넷서점으로 사는게 보편화되어서인지 리치몬드 때는 난리난리가 났었는데 어째 영풍문고 사라진다는 건 아뭇소리가 없네. 한국은 방문할 때마다 어딘가 꼭 변해있는 나라긴 하지만 작년까지도 멀쩡했던 영풍문고의 사라짐은 꽤나 충격이다.
책 한 번 냈다고 작가란 소리 들을 자격까진 없지만 어찌됐든 나도 책을 내게 되었는데, 이 때 난 로망이 있었다. 내가 한국에 가서 나의 동네서점인 영풍문고에, 10년을 함께한 그 영풍문고 한 켠에 내가 쓴 책이 떡하니 진열되어있는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일까. 다른 서점도 아니고 내겐 큰 의미가 부여되는 그 곳에서. 나중에 한국에 들어가면 꼭 내 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다짐하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리라 결심했는데 언젠가 친구에게 거기 들를 일 있으면 미리 좀 찍어서 보내다오 부탁했던게 지금 와서는 영영 다시 못 볼 마지막 유일한 사진이 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곧 없어질... 도 아니고, 일요일 부로 영업 종료한 영풍문고 강남 센트럴시티점. 그 없어진 자리를 나중에 보게 된다면 굉장한 공허함이 밀려올 것 같다. 일개 고객 한 명의 외침일 뿐이지만, 충실했던 고객으로서 그 동안 덕분에 즐거웠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자신있게 섭섭하다고 말하고 싶다.



덧글

  • smilejd 2012/06/19 00:39 #

    헉 충격적이네요 자주 갔던 곳인데 ㅠ ㅠ
  • 고선생 2012/06/19 16:57 #

    저의 자랑스런 동네서점이였단 말입니다 ㅠㅠ
  • mymetaphor 2012/06/19 01:12 #

    이건너무속상한일이에요 ㅠㅜ
  • 고선생 2012/06/19 16:58 #

    대형서점은 단순한 상품매장이 아닌,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는법인데 말이지요..
  • 2012/06/19 06:28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9 16:59 #

    아 네 출처 확실히 남겨주시면 퍼가도 좋습니다. 책도 홍보해주시면 금상첨화입니다 ㅎㅎㅎ
  • 2012/06/19 11: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9 17:03 #

    전 그 근처 살았었거든요. 어디 외출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늘 고속터미널로 가야 했고 자연히 늘 거쳐가게 되는 영풍문고는 '매우 당연한 장소'였지요. 책은 왠만해선 오프라인으로 사지만 다른 품목은 인터넷쇼핑으로 사는게 좋은것도 더러 있지요. 아마존은 거의 뭐 최고. ㅎ
    독일 서점은 꽤나 활성화되어있는 인상입니다. 규모는 한국 대형서점처럼 무작정 큰 스타일은 많진 않지만 그래도 중대형급이라 볼 수 있는 서점도 많고 성업중이죠. 독일사람들 독서율이 꽤 높습니다.
  • 아나로즈 2012/06/19 11:39 #

    없어진다 하더니만 정말로...ㅠㅠ저도 나름 첫사랑의 추억이 어린 곳이어서 더 아쉬워요.
  • 고선생 2012/06/19 17:04 #

    우와 혹시 서점에서 만난 첫사랑..? 영화같아요!!
  • 네샤마 2012/06/19 11:58 #

    거기 검색시스템이라든지 너무 개선할 생각을 안해서 언젠가 사라질 거라곤 생각했었지만 막상 이리되니 아쉬움이 남긴 하네요...
  • 고선생 2012/06/19 17:04 #

    직원에게 물어보는 아날로그가 더 정겨웠었다고 생각해요 ㅎㅎ
  • 2012/06/19 12: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9 17:05 #

    네 그 광고 참.. 그것도 서점이 멀지 않은 강남역에다 대놓고 그런 광고라니.
  • 기사 2012/06/19 18:00 #

    이제 강남권 대형서점의 유일한 희망은 신논현 교보문고 뿐인가 --;;;
  • 고선생 2012/06/19 21:10 #

    영풍문고는 임대료 문제로 방 뺐다지만 교보문고는 빌딩 자체가 교보타워니 건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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