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슈투트가르트 by 고선생

애증의 국민대에 이어서 두번째 애증 시리즈(?)

이번엔 독일의 도시다. 슈투트가르트.
한국에서는 슈투트가르트 하면 벤츠의 도시,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의 도시, 연예인 하하가 태어난 도시.. 정도 외에는 그리 유명할 것은 없는 도시일 것이다. 나의 유학 2년차때인 2008년, 난 슈투트가르트에서 4개월 정도를 살았었다. 제목은 애증이라 썼지만 사실은 '증'이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시내 중심가에 조성된 왕의 광장.
한국이 자랑하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속해있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건물.


2007년 당시엔 급할 것 없는 속편한 어학원생이였다. 그 땐 난생처음 독립해서 자취를 한다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였고 그것도 독일에서! 어린시절 이후로 다시 온 독일에서의 생활도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큰 걱정 없이 살 때였다. 어차피 대학교 지원하려면 어학이 필수고 어학이란 절대시간이 필요하니까 딱 그것만 신경써서 하면 되고 나머지는 자유. 여행도 혼자 다녀보고 당시엔 유로환율도 부담스럽지 않던 때라 사는것도 나름 여유가 있었고. 어학원생으로 살던 도시는 독일 중부의 만하임이란 도시였는데 그 해 말에 어느정도 어학 실력이 궤도에 올랐을 때 과감히 베를린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다니던 학원에서는 최고 레벨까지 배운 상태였고 바로 어학시험 과정이 있는 학원을 찾아 베를린으로 이사를 했는데 베를린이 물가가 싸서 제 2의 주거도시로 택하기도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간 과정도 카오스였지만 뚝 끊어먹고 2008년 가을. 그 사이 난 한국에 다시 갔다가 뒤늦게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만들어 다시 독일 베를린으로 왔는데 그 때 제 1지망으로 목표하는 대학교에 올인하기 위해 두번째 이사를 감행. 그 도시가 바로 슈투트가르트였다. 물론 완전 이사는 아니고 당시 베를린에선 동생과 함께 같이 살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대학지원에 올인하기 위해 전체 내 짐의 반 정도만 가지고 임시 이사를 한 것. 지금은 사진 공부를 하지만 독일에 유학을 갔던 처음 목적은 디자인과였는데 슈투트가르트의 예술대학교가 나의 1지망이였기 때문에 그곳에 올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붙는다는 보장은 없는거니까 집을 구할 때, 집주인과 계약을 할 때 난 지금 여기서 오래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방을 뺀다 하면 제대로 보증금 돌려주고 계약은 끝내는것으로 하자, 대신에 세입자는 내가 무조건 구하고 나가겠다. 주인은 좋다고 했고 무사히 난 새 방에 입주를 했다. 그 때 이 내용을 문서화해서 사인해두지 않은게 화근이였다.

보통 독일의 집은 안의 가구나 살림살이 하나 없이 텅 빈 말 그대로 빈 집인데 이 집은 침구, 책상, 장롱, 싱크대, 화장실 등 모두 인테리어 갖춰진 조건 좋은 집이였다. 위치도 나쁘지 않고 바로 앞에는 수퍼와 빵집, 약국, 은행 등 편의시설이 다 있었다. 그 정보만 믿고 온 것이였지만 막상 와보니 날 우울하게 만드는 두가지 매우 큰 단점이 존재하는 집이였다는걸 알게 되었지만. 일단 핸드폰이 거의 터지지 않는 방이다. 전화를 하거나 받기 위해선 야외로 나가야 한다. 또 한가지 매우 큰 단점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완벽한 음지 방. 지하나 반지하도 아니고 1층인데다 창문까지 있는데도 앞이 완전히 꽉 막힌 희한한 구조인지라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실질적으로 지하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여기 슈투트가르트에서 학교가 되건 안 되건 여기서 마냥 계속 살건 아니니까.. 대학 붙으면 바로 이사가야지 하는 생각 하면서 버티며 살았다.

뭔가 의욕적으로 이 도시에 왔지만 그 곳에서 산 4개월은 매일매일이 우울함 뿐이였다. 학교 교수님과의 약속을 잡아보려 했으니 단 한번도 만날 수가 없었고 나의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사실 이게, 학교에 지원하기에 앞서 따로 그 학교 교수를 만나고 한다는게 말이 안 되는 일인건데 한국에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 미술학원에서 교수에게 따로 만남 약속을 잡아서 작품을 보여주면 교수가 아주 좋게 봤을 경우 교수의 권한으로 합격시켜줄 수 있다 라는 말도 안되는 뻥을 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난 그런 뻥도 희망처럼 믿었고 무식하게 접근했던 것. 학교 문제도 문제였지만 그 집에서 산 나날들 하루하루가 정말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 최악의 4개월이였던 것 같다. 전혀 해를 볼 수 없는 조건의 희한한 방은 알람시계를 맞추지 않으면 아침이 되도 계속 밤인 줄 알고 계속 자버려서 나중에 실은 해가 중천에 뜬 한 낮에야 일어나기 일쑤였고 이 방으로 이사와서 인터넷을 새로 신청해서 개통해야 하는데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근 한달간을 인터넷을 쓸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설치하러 왔으나 그게 잘못되서 계속 안 되는데 그 연결 부분을 보면서 업체에 통화하면서 뭔갈 조정하고 고쳐야 하는데 전화가 안 터지고 계속 끊기는 방이다보니 하다 끊기고 하다 끊기고 그래서 계속 걸기를 여러번. 결국 그 달에만 전화비가 20만원 가까이 나오는 젠장맞을 경험까지 했다.

의지할 사람,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방은 우울하고. 학교 지원은 뜻대로 안 되고. 그 생활 속에서 내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먹기였다.
이태리 왕만두에다 소스 비벼서 게걸스럽게 먹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의 한끼 밥. 별로 안 많아보임? 이렇게 두 그릇.
피자는 무조건 라지사이즈로 한 판 클리어. 이게 한 끼.

정말 무지 먹어댔다. 하루 중에 유일하게 행복한건 먹는 순간이였다. 그것만이라도 없으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점점 먹는거에 탐닉했고 인터넷이 드디어 개통된 이후로는 한국 TV프로 다운받아서 보면서 먹는게 하루 일과중의 최고였다. 그놈의 유일한 낙 덕분에 점점 살은 쪄가고 몸은 쪄가는데 정신은 피폐해지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추한 나였다.
물론 슈투트가르트의 학교만 지원한건 아니였다. 그 도시 근방의 도시들의 학교에 역시도 지원하러 다닌건 당연했다. 이 곳은 슈투트가르트 옆도시인 칼스루에의 디자인 학교.
그리고 이 곳 역시 근방 소도시인 포르츠하임의 디자인학교. 보통 독일의 학교는 가을학기 입학지원만을 받지만 이 학교들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엔 여름학기 입학지원도 받아서 응시했던 곳들. 하지만 서류전형에서부터 떨어지기 일쑤였다. 필수 서류 조건인 어학증명서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포트폴리오 학원의 농간에 속은 결과인데, 어학증명서가 준비 안 되어 있어도 포트폴리오 작품만으로 응시해서도 조건부 합격이 가능하다 라는 뻥을 쳤다. 물론 그런 경우가 아예 없다는건 아닌데 아주 이게 일반적인것인양 둘러댔고 난 그걸 믿었다는게 바보짓. 여담이지만 유학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예외 경우'를 맹신하지 말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제대로 다 충족하고 지원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어학도 완성되지 않았던 내가 무작정 학교에 지원해봐야 늘 낙방하는건 당연. 하지만 당시 난, 나의 준비 부족보다도 난 이대로 계속 안 되는것인가 하는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주인 따라 상점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남겨져버린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 유학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2년이며 유학준비생에게 주어지는 비자 역시도 당연히 2년이 최고다. 이 2년의 기간 안에 독일의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추방되며 또다시 기회는 없다. 슬슬 주어진 기간의 반 이상을 소진한 나는 초조해왔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물가 비싼 슈투트가르트에서 비싼 집세 내면서 음식이나 축내며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이래선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4개월만에 다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딴건 다 제껴두고 어학이나 완벽히 마스터해서 자격증을 따자,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학교든 아니든 전국 어디 학교라도 다 지원하기로 하고, 베를린이 여러모로 살기에 싸기도 하고 동생도 같이 있으니 집세도 반씩 부담이니 다시 가자, 슈투트가르트에 나와있는건 낭비다, 굳이 얻을것도 없다. 해서, 집주인에게 그 달 말에 방을 빼겠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는데, 주인이 처음 계약했을 때랑 말을 바꾸는것이였다. 무슨 소리냐고, 독일에서 집 한번 계약하면 기본 1년은 채우는거라고, 니가 방을 빼도 1년동안 집세는 계속 가져가겠다고. 물론 체계가 그렇긴 하다 독일의 집계약은. 하지만 내가 그래서 처음에 얘기했잖느냐, 예외변수가 있으니 일찍 뺄 수도 있다고, 대신에 다음 세입자는 내가 구하겠다고. 그러자, 우린 다음 세입자 안 받아도 된다 암튼 니 계약은 1년간이다 라고 버틴다. 정말 내가 그 때 그렇게 말도 잘 하는것도 아닌데 그 집주인이랑 독일말로 대판 싸운건 독일 와서 처음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을 싸우고 해서 겨우겨우 담판을 짓긴 했는데, 그 과정이 거의 2주 이상 걸렸던 것 같다. 정말이지 외국인 등쳐먹는 악덕주인이 있단 얘기는 들어왔지만 그게 내 경우가 될 지는 상상도 못했다. 바보처럼 당할 수 없어 하면서 끝끝내 싸워서 세입자 구하는 조건으로 방을 빼는덴 성공했지만 또 세입자를 구하는게 문제였다. 그것도 정말 극적으로 구할 수 있었던게 다행이지만.

그 집주인과의 싸움은 이후 1년 정도를 더 끌었는데, 바로 보증금 때문이였다. 방을 뺐으니 보증금은 돌려줘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면서 돌려주지 않는것이였다. 이 보증금이란 보통 3개월치의 월세인건데, 그만큼 큰 돈인 것이였다. 이미 베를린으로 돌아온 나는 전화도 해보고 편지도 보내고 했지만 답은 없었고 끝끝내 결정적으로 이딴식으로 나오면 경찰에 소송을 걸어서라도 받아낼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 편지를 보낸 한달 후에야 미적미적 온 답장에는 방을 더럽게 썼으니 청소비 명목으로 몇백유로를 떼고 돌려주겠다 라는 어이없는 말이 써 있었다. 분명 방 빼기 전날까지 열심히 청소를 했고 방 빼는 날 집주인에게 방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이상없음을 확인받았고 몇개월 안에 보증금을 보내주겠다 약속을 받았는데 말이다. 역시 모든 일에는 서면계약이 필수라는걸 깨달았던 슈투트가르트 살이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보증금은 받긴 했다. 청소비랍시고 200유로나 떼인 상태로. 지칠대로 지친 나는 그거라도 받은게 다행인 셈 치고 다신 그 집주인에게 연락같은건 하지 않았다. 그래도 홀가분했다.

슈투트가르트는 괜찮은 도시다. 규모도 있고 볼데도 꽤 있고 살기도 나쁘지 않다.(물가는 좀 있지만) 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슈투트가르트에서의 4개월은 나에겐 지옥과도 같은 우울함과 극심한 스트레스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그 도시를 벗어나는 마지막까지 온갖 트러블 때문에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그 전보다 훨씬 팅팅 불어버린 기름덩어리 거구를 이끌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서야 다시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찾은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2009년 초부터 어학과 학교지원 모두 필사의 의지로 임한 결과 2009년 가을, 도르트문트를 포함한 세 학교에서 합격 소식을 받아냈고 난 도르트문트로 향해 와서 지금까지 공부하며 살고 있는거다.

그 때의 더러운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것일까. 어쨋든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 악랄한 집주인의 얼굴이 생각나고 통화불능에 햇빛도 들지 않는 거지같은 방이 생각나고 되는 일 하나 없은채 방 안에서 음식물이나 껴안고 앉아 우걱대며 웃음소리 만발하는 컴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시시덕대며 애써 자위하는 나의 추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애증의 슈투트가르트였지만 슈투트가르트는 뭔가 의욕적으로 딱 갔을 때에만 '애'였고 그 곳에서 살기 시작한 날 부터는 주욱 '증' 뿐이였던 것 같다.

나의 뒤를 이을 세입자가 나타났을 땐 구원자가 나타난것처럼 기쁘고 고마웠고 내가 신청해둔 인터넷도 이어 쓴다는것이 너무나 기뻤고 뭣보다 지긋지긋한 곳에서 날 탈출시켜준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고마웠다. 무거운 짐들을 실은 가방을 양손에 낑낑 들고 올라탄 베를린행 기차에서 그 방의 침대에서보다 훨씬 달콤한 꿀잠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덧글

  • 2012/06/11 08:5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1 17:37 #

    헉.. 20키로 찌고 10키로 빠지고.. 등락폭이 크시네요..ㅎㅎ
    지금이야 학교 다니며 학교기숙사에서 살고 있어서 집 자체는 후지지만 적어도 통화불능이나 햇빛 없는 집은 아니네요.
    스트레스 풀게 그거밖에 없는건 아니지만 그 땐 상황이 그거밖에 없었네요.. 지금은 잘 조절하며 삽니다.
  • Reverend von AME 2012/06/11 10:35 #

    Stuttgart 가 워낙 좀 보수적인 도시이고, 독일 내에서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좀 높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한 2주 있다가 왔는데 좋은 기억들만 있긴 하지만, 살고 싶은 곳은 아니더라고요. 너무 '도시' 같달까...
  • 고선생 2012/06/11 17:38 #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사는데에 나쁜 도시까지는 아니였습니다. 한가지 걸리는게 있다면 그 도시의 물가가 꽤 높은게 문제라면 문제..ㅎ
  • 2012/06/11 11: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1 17:42 #

    타지에서 몇년을 살고 있는 동안 그 시기가 정말 암흑이였네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정도 고생은 아니였는데..--;
  • 2012/06/11 19:54 #

    제 이야기 같네요. 잘읽고 갑니다.^^
  • 고선생 2012/06/11 19:59 #

    힘냅시다!
  • 2012/06/12 00:41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2 00:46 #

    안녕하세요 :)
    사실, 보증금을 온전히 받는다는건 어렵긴 하지요. 원칙이 처음 그 방에 들어왔을 때의 상태 그대로 수리하고 청소해놔야 하는건데, 사실 그 방은 모두 모델링 된 집이였고 방 빼는 날 주인이 직접 둘러보며 이상없음을 확인했고 보증금 돌려주겠다 했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가서 딴 소리. 그리고 왠지 제가 독촉 안 했으면 아예 돌려줄 생각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떤 연락도 받질 않았으니..
  • 너아ㅣ 2012/06/12 15:01 # 삭제

    글을 너무 잘쓰셔서 완전 모니터에 빠져들어서 읽었네요 ;;.. 저도 타지살이 겪어봤기에 님 심정이 99.9%이해가 가요..ㅠㅠ 그때생각 나서 눈물이 핑도네요... 다들 한번씩 암흑기를 겪나봐요..!!!
  • 고선생 2012/06/12 15:09 #

    타지살이하면서 늘 잘 풀리는 분도 있겠지만 꼭 이렇게 시련 한번씩은 있는게 일반적인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고 앞으로의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할 수도 있는..ㅎㅎ
  • 2012/06/13 06: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6/13 06:14 #

    성급한 일반화는 어리석은 짓이지만 저 당시엔 정말이지 독일사람이, 독일 자체가 정말 다 싫었었죠..
    비싼 돈, 비싼 세월 소비해서 경우의 수 하나를 잘 배운거죠 뭐!
  • 반허공 2012/06/13 09:47 #

    독일이라는 나라자체가 케바케가 너무 많은듯 싶습니다. 그런데 보통 자신에게 좋은것에는 엄격하게 심사받고 나쁜것에는.. ㅋㅋ
  • 고선생 2012/06/13 16:08 #

    독일 뿐이겠나요. 어디서든 똥 밟을 경우는 꼭 있겠죠. 재수없는 일 없으면 좋고 혹시 닥치더라도 잘 극복하는 지혜도 필요...
  • 2013/03/08 21: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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