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 시작. 하루 온전한 고생. by 고선생

학업의 막바지. 졸업을 준비하는 졸업작품을 제작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그 첫 촬영을 했던 날이였는데 제가 정한 주제는 사진 한 장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써버려야 하는 아주 가혹한 작업이죠. 작품의 제목은 1 Day(가제)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찍는지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지는 아직 비밀이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똑같은 장면을 아침 해 뜰 때부터 저녁 해 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 찍어야 한다는거죠. 그렇게 하루를 써서 겨우 사진 한 장을 만듭니다.

이게 말이 쉽지 엄청난 고생이죠. 편하게 방 안에서 카메라 설치해두고 딴 짓 해가며 촬영한다면 모를까, 원하는 장면이 보이는 야외에서 카메라 설치해두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하루종일 있는다. 그나마 누가 도와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이나마' 편합니다. 맡겨놓고 딴데 갔다 와도 되고 식사도 편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용변문제가 해결! 하지만 저 혼자서 하는 이 작업은 도난의 우려 때문에 절대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힘든 가장 큰 이유죠. 아침 5시반부터 해가 지는 밤 9시 반까지 작업을 한 하루입니다. 한 자리에서 계속요. 상상이 가시나요? 기다림의 절정인 자연다큐사진작가들도 텐트 정도는 치고 쉬면서 찍거나 차 세워두고 차 안에서 휴식도 취해가면서 찍습니다.
제가 이 날 찍었던 장면을 위해서는 도르트문트 중앙역의 플랫홈에 장비를 세팅해야 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번 이 짓을 해야 하니 간이의자를 아예 하나 새로 사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방석두요. 어찌어찌 자리를 잡아보니 플랫홈의 벤치 바로 옆이 되어서 이 날은 의자까진 필요없을뻔도 했지만 그래도 열차 기다리는 분들도 앉아야 하니까요. 복장은 최대한 얇고 편하게! 츄리닝 위주! 몸이 고생하는 날엔 복장은 편한게 장땡입니다.
찍을 장면에 맞춰서 삼각대와 카메라 세팅 완료. 이렇게 새벽 5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16시간을 흔들림없이 유지해야 합니다. 미추어버리겠구만. 
사실 어제가 처음 시도가 아니고 그 전에 한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예상치 못한 비로 인해 완전히 망치고 이번에 다시 시도한겁니다. 요새 일기예보는 도대체가 믿을게 못되지만 그래도 이 날은 줄곧 맑음이라고 했거든요.(그래도 또 속았습니다. 그 얘긴 나중에)
자아 그렇게.. 삼각대 앞에 의자에 앉아서 무슨 낚시꾼마냥 촬영에 임합니다. 플랫홈 양쪽의 레일에선 계속 열차가 왔다갔다하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전 16시간을 계속 본거에요.

먹는 문제는 이 날엔 도시락을 싸지 못해서 빈손으로 나왔는데 세팅 전에 샌드위치와 햄버거 몇개를 포장해와서 가방속에 넣고 배고플 때마다 꺼내서 야금야금 먹는걸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물는 1리터짜리 하나, 1.5리터짜리 하나.
한.. 2시간쯤 버텼나요? 아침 7~8시? 아뿔싸. 망했다 이 타이밍. 아침 7~8시엔 제가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지요. ..대변보기 ///-_-/// 신호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집에서 미리 좀 보고 오지!! 하는 당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렵지 않을 땐 절대 힘을 줘도 안 나오는게 바로 대변이에요.. 무방비였습니다. 이걸 어쩌나. 해결책은??  ..그저 참기. 그저 열라 참기. 참고 또 참기. 다행히 전날에 별로 많이 안 먹어서 양이 적었는지(죄송합니다..) 한번 참고 나니 쑥 들어가더라구요. 대변이란게 한두번 참을 타이밍에 잘만 참아주면 한동안 버티기가 가능하잖아요. 전 대변 문제는 두어번 참고 나니 밤 9시 반에 촬영 마칠 때까지 참아지더라구요. 정말 다행이였습니다...

대변은 참을 수 있는 반면 문제는 소변입니다. 이건 도대체가 참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기본 식수를 녹차, 홍차 등 차로 마시고 있는 저로선 그냥 물보다도 소변이 더 잘 마려운것이 문제. 되도록이면 물을 적게 마시며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누적되는 마려움은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소변은.. 봤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비상수단으로 소변용 물통(...)을 하나 가지고 간게 있었습니다. 양 옆의 열차가 없고 마침 플랫홈에 아무도 없을 때.. 입고 있던 잠바를 괜히 무릎이 시린척 '어~이 오늘 날씨 좀 춥네~' 중얼대면서 무릎을 덮은 후.... 물통을 안 보이게 아래로 집어넣은 뒤 거기에 봤습니다....-_-;; ..전 무슨 이런걸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죠;
참다참다 못해서 본 소변인만큼 이 소변 이후로는 다행히 9시 반까지 계속 버틸 수 있었습니다. 촬영 끝나자마자 중앙역 내의 공중화장실로 튀어갔지만요.

이게 다 제가 혼자서 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이였기 때문입니다. 도우미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이럴때 도움 요청하니 친구들은 다 일이 있대고.. '도움'을 부탁할 수 있는 지인이 아니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조수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진심으로 느꼈던 하루였지요.

중간에 한가지 시련이 있었는데 분명 맑다던 예보를 배신하듯 굵은 소나기가 왔죠. 비가 온다고 카메라를 옮길 순 없고.. 급한대로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카메라를 덮고 전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으로 피했습니다. 물론 카메라를 계속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요. 길게 오진 않은 소나기였지만 꽤나 굵은 빗방울 때문에 걱정 한바가지였는데 옷과 의자랑 가방만 젖는걸로 끝나서 다행이였습니다. 그 후론 또 계속 더워서 물기는 금새 말랐구요.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등등 계속 저를 보게 되죠. 사람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뭔가 하나보다' 하면서 슥 보고 지나쳐가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죠. 애들은 되게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고 궁금함을 못이겨 '지금 무슨 작업하는거에요?'하고 말을 걸었던 사람들도 상당수. 그리고 계속 이렇게 카메라 세워두고 가만히 있으니 이게 비디오캠인줄 알고 괜히 지나가면서 이쁜표정짓는 사람들(ㅋㅋ), 얼굴 찍힐까봐 피해가는 사람들, 이거 뭐하는 작업이냐고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 등등.. 가장 재밌었던건 오후에서 저녁쯤 되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절 본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다시 절 보면서 '어, 아침에 봤는데 아직도 있네요?' 하며 말 걸던 사람들. ㅋ 그게 궁금했는지 그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질문 공세. 무슨 작업이냐, 일이냐, 취미냐.. 그런 사람들이 일곱명이나 됐지요. 두번째 본 사람들.ㅎㅎ 그리고 그 플랫홈에서 계속 청소를 하는 미화원 아저씨도 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꿈쩍을 않고 카메라 앞에 앉아있으니 아직도 있느냐고 말을 거시고.. 순찰하던 경찰관, 기차 역무원 등도 한번씩 말을 겁니다. 이 날 하루는 제가 도르트문트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불특정 다수와 대화를 했던 날이네요.
가장 큰 괴로움은 당연히 육체적 피곤이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거라곤 가끔씩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는것 뿐,  그 외엔 계속 앉아서 카메라를 지켰을 뿐입니다. 가만 있는다는것이 가장 힘든거네요. 이걸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 갈아가며 웹서핑하고, 영어교재 문제지 좀 풀고, 동영상 보고, 음악 듣고.. 멍 때리고. 문제는 앞으로 이 짓을 많이 더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고생한 만큼 결과물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작업을 마치기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노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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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선생의 놀이방 : 2012년 7월 한국 출장기 2. 출장 사진작업 2012-07-20 04:42:35 #

    ... 업은 독일 와서 이제 해야 하구요. 2. 졸업작품 작업, 광화문 블로그 자주 와주신 분들이라면 이 사진만 보고도 딱 알아보시겠으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작업방식 설명. 요거를 클릭하시면 링크됩니다. 서울에서의 첫 작업은 광화문 앞에서였습니다. 사실 작업하기로는 가장 방해도 없고 좋았던것이, 광화문 바로 앞이 널따란 광장이고 광장이 워 ... more

덧글

  • 이네스 2012/05/01 23:56 #

    오옷! 역시 캐논이시군요.

    24시간이나 한곳에서라니. 진짜 몸이 뻐근하셨겠습니다. ㅠㅠ

    대소변은 진짜 난감하셨겠습니다.
  • 고선생 2012/05/02 20:22 #

    24시간까지는 아니고 새벽 5시반부터 저녁 9시반까지였어요. 16시간 정도. 하루 권장 수면시간 빼고 다군요..;
    참는다고 참았는데 소변은 저렇게 몰래 해결했지요;
  • 루아 2012/05/01 23:59 #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결과 기다릴게요!!!
  • 고선생 2012/05/02 20:22 #

    최종결과물은 내년 초나 되어야 완성될테지만 중간중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할 때 포스팅할게요 ㅋㅋ
  • canto 2012/05/02 00:53 #

    전 고선생님 블로그 꽤 오랫동안 눈팅해왔는데 요리 공부 하시는줄 알았다가 얼마 전에서야 사진을 하신다는걸 알았어요~

    음식 사진도 다들 정말 좋아서 취미로 사진 찍으시는 줄^^;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고생하신 완성작이 진짜 기대되네요!!

    아..디테일한 묘사에선 깜놀까진 아니고 슬쩍 놀랐어요ㅋㅋ
  • 고선생 2012/05/02 20:25 #

    으허..ㅋㅋ 공지사항에 간단 프로필을 설명해두었습니다. 음식포스팅 위주로 눈팅하셨나보다 :)
    사실 뭐 졸업작품 하면 그전까지의 작품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모든걸 뛰어넘는 내 모든걸 부딪혀 만드는 차원이 다른 작품!! 이여야 될 것 같지만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졸작도 그냥 어느때처럼 해왔던 프로젝트일 뿐입니다. 물론 좀더 정성을 들이긴 하죠. 한장에 하루가 걸리는 작업인만큼, 그 정성만큼은 사진에서 느껴질 수 있다면 바랄게 없습니다 ㅎㅎ
  • Reverend von AME 2012/05/02 02:12 #

    헉 하루종일 버티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역시 저런 작업은 친구 한두명 데리고 해야 할 만한데...다음부턴 같은 과 친구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건 어때요.? 고선생 님도 그 친구들 작업 도와주는 걸로 갚으면(?) 되고. ㅎㅎ 전 작업 때문은 아니고 기차/비행기 기다리느라 10시간 남짓 짐 지키며 있어야 했던 적이 좀 있어서(화장실 갈 땐 그 짐을 또 다 챙겨서...) 얼마나 힘드셨을 지 공감합니다. 차라리 한적한 자연풍경 촬영은 도난 위험이 적기라도 하지만 저런 도심의 경우엔 난감하죠... 아무튼 힘내셔서 나머지 작업들도 잘 해내시길. :-)
  • 고선생 2012/05/02 20:26 #

    친구에게 연락해봤지만 뭐가 그리들 바쁜지.. 잠깐만 화장실 가고 밥먹고 하는 단 30분 정도만 봐줘도 되는데.. 쩝이였네요 쩝. ㅋ
    정확히 16시간을 버텼네요. 참 지루하고 몸도 힘든 시간이였지만 그래도 깨알같은 에피소드도 있고 사람들과 의외로 대화도 많이 했고, 종반에 가서는 그런 즐거움이 있어서 다행이였어요 ㅎㅎ
  • 애쉬 2012/05/02 02:45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고선생 2012/05/02 20:27 #

    에고 고생은요 뭘. ....이라고 절대로 못하겠네요. 고생좀 했습니다! ㅋ
  • 2012/05/02 10:1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5/02 20:28 #

    블로그가 언제나 저의 작품 첫 공개장소이고 보러 오시는 분들은 첫 감상객들이신걸요 :) ㅎㅎ
    감사합니다. 살은.. 아직도 넘 멀었네요.. 이게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빠져요..ㅠㅠ
  • 2012/05/02 11: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2/05/02 20:29 #

    비밀님의 이런 덧글만으로도 방전됐던 힘도 부쩍부쩍 급충전!! 빠밤~ 고마워요..
    덕분에 행복해^^ 비밀님도 토닥토닥..
  • crazymi 2012/05/02 18:05 #

    정말 대단하시네요, 작품에 대한 열정...!
    나중에 완성작 살짝이라도 보고싶은 마음이네요.
    기대됩니다. ㅎㅎ
  • 고선생 2012/05/02 20:30 #

    완성된 작품은 당연히 공개하죠 ㅎㅎ 그치만 아직 최종완성까지는 멀었네요. 하루 걸려 한 장을 만드는데 한 10장은 만들어야..;;
  • 마틸다 2012/05/02 21:58 #

    졸작이면... 정말 무지막지 상상초월로 바쁘시겠네요ㅠㅠ.....
    제가 독일에 있다면 어시스턴트로 좀 도와드릴텐데....
    아주 많~이 고되시겠지만, 그만큼 또 추억이 쌓이고 좋은 작품이 나올거에요!!!
    응원합니다 고오빠!!! ^.^/
  • 고선생 2012/05/02 23:23 #

    어시스턴트.. ㅎㅎ 말만이라도 참 고맙네요.
    이게 참.. 뒷일 생각 안해보고 결정되버린 작업인지라.. 앞으로도 고생문이 훤~합니다.ㅠ
    추억이랑 좋은 작품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고생 다 하겠는데.. 과연..?ㅋㅋ
  • nalbbng2 2012/05/03 12:44 #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넹 ㅠㅠ 하루에도 수십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데....(뭐랄까...습관? 진짜 막 급한일도 아님서..)

    그래서 화장실이 불편한 나라는 여행을 잘 못가지 (인도나...중국이나...중국갔다가 고생한거 생각하믄..ㅠㅠ)

    한장 찍을려면 하루 걸린다고 했던말을 이제..이해가긔...

    어른들말씀 틀린거 있긔없긔?

    '고생을 사서해라..'
  • 고선생 2012/05/03 16:15 #

    화장실 많이 가는건 확실히 습관적이기도 한듯. 이 날엔 몰래 소변 본 거 외에는 하루에 화장실을 딱 한번만 간 위업 달성..
    그것도 작업 다 끝나고 나서. 작업하는동안엔 어찌 다 참았는지..
  • haru 2012/05/03 15:30 #

    좋은 결과 나오실 거에요. 힘내시고:) 몸 잘 챙기시길 바랍니닷! 완성작 기대중이에요ㅎㅎㅎ
  • 고선생 2012/05/03 16:18 #

    이렇게 고생고생했다 하니까 뭔가 엄청난 작품일거야! 하는 기대심리만 키워드린것 같아서 부.. 부담이;;
  • luoshan 2012/07/20 21:22 # 삭제

    이 사진작업은 다 끝나신거예요?? 갑자기 스타인생극장 이승환편이 생각나네요//
    콘서트날 아침엔 꼭 컵라면을 먹는다는 이승환씨.
    짜게 먹어야 나트륨이 몸의 수분을 꽉 잡고있어 공연 도중 화장실을 안가게 된다는.. 말이 생각이 나네요ㅎㅎ
    담에 작업하실때 한번 해보세요~~ㅎㅎ ^^
  • 고선생 2012/07/20 21:26 #

    으 이론적으론 좋은 방법이긴 하겠으나 짜게 먹은 아침 때문에 저라면 쉼없이 물을 마셔댈게 뻔합니다. 목마름은 배고픔보다 못 참거든요.. 그럼 소변은 배로 마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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