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산타를 중1까지 믿었다. by 고선생

난 나름 순진무구했다. 바른생활어린이였고 그 바른생활은 청소년의 문턱인 중 1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엔 레벨업했지만.
산타를 믿은건 중1 크리스마스때까지였다. 물론 초등학생때도 동심의 번데기를 일찌감치 깨버린 몇 친구들은 산타 그런거 없다고 그랬지만 어디서 못된거 들어가지고 함부로 나불댄다고 난 그들을 욕했다. 감히 산타님을 욕보인다고. 요샌 유치원생들 중에도 산타의 실체를 아는 애들이 더러 된다는 참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너네집 가정은 참 화목해. 드라마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이야." 언젠가 내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렇다. 우리집은 화목명랑따스한 분위기다. 그러한 집안분위기가 나의 순수성을 더 오래 지켜줬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늘 크리스마스 이브에 양말을 걸어놓고 자면 다음날 어김없이 그 안에 선물상자가 들어있었다. 빨리 자지 않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고 그냥 가신다는 부모님의 당부말씀에 세수하고 양치하고 곱게 양말 걸어두고 아무 의심없이 잠에 들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기상하자마자 양말확인. 어김없이 들어있는 선물상자에 산타할아버지께 감사드렸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 회사동료분들인 한국인 가족들과 함께 갔던(당시 울가족은 독일에서 주재원 생활하던 아버지 따라 독일살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산타가 등장했었다. 그리고 직접 선물을 받았다. 그땐 말로만 듣던 산타가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하는걸 확신했던 순간이였다. 금년엔 특별히 모두의 앞에 나타나셨구나 하고. 더군다나 독일이니 얼마나 더욱 분위기가 제대로일까.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산타를 계기로 산타는 있다 라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산타의 존재의 실체를 알게 된 후에 모든 실마리가 풀리긴 했지만 이런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이 다같이 쇼핑을 나가서 엄마는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럼 내가 제일 갖고 싶은 장난감코너로 가서 이거! 이거! 를 외쳐댔다. 엄마는 그랬구나.. 이게 갖고싶었구나.. 이제야 알겠다.. 라시며, 네가 이걸 골랐으니 분명 오늘 산타할아버지가 주실지도 몰라? 하고는 선물을 놔두고는 내 손을 잡고 유유히 다른쪽으로 갔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던 아빠는 엄마와 내가 고르는 선물을 보고 잠시 화장실을 가는척 하시곤 엄마와 내가 장난감에서 멀어졌을때 재빨리 집어다가 몰래 계산을 하고 사두셨겠지 ㅋㅋ

산타할아버지 오늘 고른 히맨 장난감을 꼭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주세.. 주.. 쿨쿨.. 그렇게 잠이 들었던 8살의 나는 다음날 내가 골랐던 히맨 장난감이 고스란히 양말속에 담긴걸 보고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히맨 놓고 갔어!!! 휴일인 크리스마스 아침, 아직 늦잠 주무시던 엄마아빠를 구태여 깨우며 이 신기한 경험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엄마아빠는 우와! 정말이네~ 승진이가 올해도 착하게 잘 살았나봐~ 원하는 선물도 받고..~ 하시며 내 호들갑에 호응해주셨다.

나의 순진무구는 구태여 전날 밤 부모님이 뭘 갖고 싶냐고 물어본게 사전조사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는데에 있다. 부모님 말씀 철썩같이 믿는 순둥이였다. 이걸 골랐으니까 분명 이걸 주실거야.. 라니, 그걸 철썩같이 믿는다니.ㅋ 그리고 늘 크리스마스엔 그래왔기에 그 믿음은 중1까지나 갔다. 나중에 세상을 좀더 알게 되고 성장을 한 후 부모님께 넌지시, "그 때 선물.. 엄마아빠지?"라고 물었을 때 쿨하게 웃으시며 그걸 이제 알았냐고 참 일찍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떠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난 나의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덩어리였던 시절보다 그렇게 계속 나의 동심에 상처 없이 매해 이벤트를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씀이 참 고마웠다.

스물이 넘고 서른이 넘은 지금, 난 독일에서 5번째의 나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조용-하다. 서양이고 크리스마스의 본토이고 한데 한국보다 더 화려하고 그렇지 않느냐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 시즌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은 한국보다 화려한데가 더 있을까 싶다. 소중한 가족끼리 모여 회포를 풀고 선물을 나누고 따뜻한 음식을 함께 먹고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그런 날인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상점은 죄다 문을 닫고 모두들 가족끼리 뭉치는 그런 날이다. 거리 쇼핑가들이 북적이고 연인들이 이 날은 자기들 날이라고 이마빡에 써붙이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날이 아니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선 '연인의 날'이란 의미부여에 뭘 그렇게나 신경들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소에나 서로 잘 할 것이지. 종교인물의 탄신일에 자기들끼리 좋아죽겠대 ㅋ 이맘때가 되면 단란한 가족과의 한 때가 그리워진다. 소소히 선물 주고받으며 기뻐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여자친구가 있더라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자 주의인 나다. 여자친구랑은 이브에 놀면 될 일. 크리스마스에 연인에게 올인하는 사람들은 추석이나 설에도 가족이 모여도 가족에 충실하지 않고 어른들 눈 피해서 방 안에 문 잠그고 들어가서 연인들이랑 수다나 떨겠지.

산타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던 나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아니였을까 회고한다. 선물받고 싶어서 그 날을 기다리며 며칠전부터 착한어린이 모드로 산타할아버지 보라고 착하게 굴고, 울면 우리 마을에 안 오신다길래 울고싶은것도 다 참고.. 그렇게 고대하던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눈 떠보니 양말속에 들어있던 그 선물! 그리고 그 모든걸 기획하신 부모님의 사랑. 종교 없는 사람도 있으니 예수탄신은 둘째친다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간의 바로 이러한 끈끈함을 확인하는 그런 날이여서 행복한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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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터오진 2011/12/23 22:57 #

    저는 유치원때 우연히 결정적인 장면을봐서 진실을 알고나서도
    '사실 진짜 산타가 어딘가에 있을꺼야!'라고 현실도피.
  • 고선생 2011/12/24 20:03 #

    ㅎㅎ 리얼 산타가 핀란드 산타마을에 계시긴 하지요. 하늘을 나는 루돌프썰매는 없지만.
  • ranigud 2011/12/23 23:06 #

    독일 산타는 좀 무섭지 않나요? 예전에 스펀지에 나온거 보니까 뭔가 분위기가 다르던...
  • 고선생 2011/12/24 20:04 #

    이쪽 산타가 제대로 아닌가요? 뚱뚱, 덥수룩수염, 온화미소.
  • 2011/12/24 07: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emilla 2011/12/24 12:04 #

    전 여덟아홉 살 때쯤인가, 부모님이 차 트렁크에 미리 사서 숨겨두신 선물을 발견하고는 산타는 없고 부모님이 사두시는 거란 걸 확신했지만 부모님은 끝끝내 시치미를 떼셨죠.....
  • 고선생 2011/12/24 20:05 #

    전 글에 썼던 백화점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산타를 철썩같이..
  • 풍금소리 2011/12/25 22:32 #

    진짜 화목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라나셨군요.
    어머니를 꼭 닮으신 음식솜씨에서 엿보긴 했지만요...부럽사와.
    크리스마스를 축제처럼 여기는 건 미국이나 한국처럼 소비성국가가 그렇지요.
    근데 올해는 좀 아니네요.백화점엔 여전히 주차난에 사람이 터져나가지만 거리엔 트리와 캐럴이 사라졌고...매출도 좀 떨어졌다고 합니다.
  • 고선생 2011/12/26 00:05 #

    축제인건 좋은데 특히나 한국에서는 '연인의 날' 이미지가 그 무엇보다 강해져있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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