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이 되고싶었을때 by 고선생

난 학창시절동안 반장이건 부반장이건 해본 일이 없다. 물론 하고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만약 반 전체가 추천을 하거나 선생님이 너 하라고 떠밀어도 정중히 사양했을것이다. 많은 이들의 대표가 되는것,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고(뭐 그리 거창한건 아니라 해도) 하는 그러한 책임은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그런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때의 반장 부반장은 정말이지 더더욱이나 그 위치의 매력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반장은 늘 공지 받느라 교무실 들락거려야 하고 체육시간 시작 전엔 그렇게나 들어가기조차 거부감이 드는 체육실에 가서 지시사항을 받아야 하고 반의 질서를 유지시켜야 하고 반장이기 때문에 방과후 모두 귀가할 때도 반에 남아야 하는 일이 수없이 많았으며 반장이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교실내의 일 때문에 대신 벌을 받는 부조리함도 보았다. 특별히 반장이라고 급우들이 대접해주는것도 없고 한 그 자리에  그 어떠한 욕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생땐 적어도 중고등학생때처럼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였다. 삭막하고 재미없는 남중, 남고를 나와서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당시 반장, 부반장이란 타이틀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의 '국민학교' 시절엔 반장 부반장은 거의 반 내의 인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새학년이 되고 새로 반이 꾸려지면서 짧은 기간 안에 행해지는 반장선거. 애들끼리 친해지면 얼마나 친해졌으며 서로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누가 반장하면 좋겠다 의견이 모아지겠는가. 결국 이미지투표, 인기투표인것이다. 특히 사춘기의 도입기가 시작되는 5,6학년쯤 되면 그 반의 남자반장,부반장, 여자반장,부반장 총 4명(지금의 체계는 모르겠으나 나 때는 그렇게 4명이나 뽑았다)은 그 반의 능력자이거나 인기인이거나 그런 경우였다. 보통 능력자, 인기인은 운동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는게 보통이였다. 성격도 좋다. 요샛말로 엄친아 이미지란거겠지. 그리고 그런 묘한 이미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것이였다.

남자애들하고나 치고박고 놀다가 어느 순간 여자애를 눈 빤히 뜨고 보는게 어색해지고 같이 짝꿍이 되어 앉으면 괜히 서로 몸 닿는게 어색해서 떨어져 앉고 책상에 3.8선 그어가며 티격대고, 그치만 함께 하는 그 느낌은 싫지 않고, 가끔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이상한 감정에 한 눈 팔기 힘들고.. 뭐 그런 totaly "..이 기분은 뭐지??" 라는 알 수 없는 느낌의 상태가 나에게도 찾아온 그 시절, 반장선거는 참 매력적인 아이템이였다. 난 교실 최고의 인기인이라거나 그러한 '대세인물'과는 거리가 멀었고 조용하면서 그냥 성격좋고 애들하고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에 불과하고 그래도 남들보다 발육이 빨라 같은 학년에서 가장 기럭지 있는 인물이여서 그런걸로는 소소히 회자되고, 또다른 인기상의 척도인 선행상도(100% 반 친구들의 투표로 부여되는 상이였기 때문에) 받아본 이력도 있고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괜히 기대하는 뭐 그런.. 뭐 그런게 있었다. 보통 반장선거는 별 기준없이 반 아이들의 공천(?)을 받아 진행되지 않는가. 누구를 추천합니다, 누구를 추천합니다... 그렇게 기준없이 공천(?)된 서너명의 아이들이 죄다 후보로 칠판에 적히고 후보자들의 즉흥 연설 후에 바로 투표. 

6학년의 나는 5학년에 이어서 공천받는데 성공했다. 반장이 되든 안 되든 날 추천하긴 할 정도로 내가 이미지가 괜찮은 애구나 하는 그정도의 만족으로도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이왕 후보가 되면 살짝 욕심이 난다. 사실 이미 결과는 다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유력한 당선자는 이미 나온 상태고 걔가 될것이 분명한거고 그런 애는 기호 1번으로 공천된다는것을. 
그치만 후보가 되고 연설도 마치니 긴장된다. 그때부터 김칫국을 마신다. 이거.. 다음주쯤에 엄마한테 맥도날드에 단체주문해야된다고 말해둬야하나..? ㅋㅋㅋ 아이참.

뭐 결과는 낙선. 부반장도 낙선. 그러니 내가 반장 부반장을 해본적이 없지. 어쨋든 부반장은 2위 득표자로 결정되는데 나는 다른 어떤 녀석과 '공동2위'였다. 너네 둘이 다시 투표하자는걸 난 괜히 소심해져서 미스코리아 멘트를 남기고 포기해버린것이다. '저 말고 얘가 더 잘할거에요^^' 아쉽긴 했지만 만족했다. 내 이미지는 이정도로구나 하는 만족감.

당시 굳이 '존재감 순위'를 따지자면 1순위는 남자반장, 2순위는 여자반장, 3순위는 남자부반장, 4순위는 여자부반장(여자분들 화내지 마세요.. 그때당시엔 그런 편이였답니다..;;), 그리고 5순위는 바로 '서기'였다. 그의 존재감은 금요일마다 하는 HR시간에 빛났다. 선생님의 전유물인 교실 칠판을 자신만의 캔버스로 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

난, 중앙정부 말고 지방의 요직으로 만족했다. 4분단장과 미화부장을 역임했다. ㅋ



핑백

  • 고선생의 놀이방 : 2011년 12월 2011-12-31 04:31:39 #

    ... 이 달의 읽을거리 연말기분 반장이 되고 싶었을 때 난 산타를 중1까지 믿었다 올 F 이 달의 음식 로스트비프 과정은 간단, 결과물은 훌륭 와사비크림스파게티 with 연어. 새로운 맛과 비주얼을 잡아볼까 ... more

덧글

  • 밤비 마마 2011/12/23 05:08 #

    우와... 미화부장...그건 대개 여자들 담당인데요? 고선생님의 미적감각이 탁월했나 봅니다. ㅋㅋㅋ
    전 중학교까지 임원후보는 자주 했는데...그 동네에서 임원되면 아주 골치아팠죠...특히 부모님들이. 그래서 안되는 게 더 좋았고 된 아이들은 골머리 앓던 기억이 납니다
  • 밤비 마마 2011/12/23 05:18 #

    근데 왜 반장엄마들이 한턱을 내야되죠? 제가 중고딩일때도 그런 전통은 없었는데. 반장이나 임원은 봉사하라고 뽑은거지 벼슬이나 감투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애들이 돈 걷어서 반장한테 밥사줘야 되는거 아닌가요? ㅍㅍㅍ
  • 고선생 2011/12/23 08:12 #

    왜 그러느냐고 반장엄마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ㅎ 저희엄만 반장엄마를 한번도 안해봐서 저도 모름. :)
  • ranigud 2011/12/23 15:31 #

    전 그래서 한턱 안냈습니다 ㅋㅋ 돈도 없심
  • 2011/12/23 06: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12/23 20:37 #

    전 그래도 거절할거에요. 싫다는데 강압적으로 시킬 순 없죠 ㅎ
  • ranigud 2011/12/23 15:31 #

    지방의 요직 ㅋㅋㅋ 닭대가리도 괜찮아요 ㅋㅋ
    저도 여자남자 반장, 여자남자 부반장 이렇게 4명 뽑는 시절이었습니다 4학년때는 부반장도 해봤어요. 그 전에도 후보추천은 자주 받았지만 하기 싫어서.... 역시나 힘들더만요 부반장인데도...
  • 고선생 2011/12/23 20:38 #

    욕심이 살짝 났어도 막상 반장되면 부담스러웠을거에요. 물론 초딩땐 나름 반장이면 그 이미지의 대가를 받는 편이라 그런건 즐겁겠지만..ㅋ
  • 고우켄 2011/12/23 17:01 #

    무존재감 지향이던 저랑도 별 인연이 없던 자리군요.
    오히려 대학에 와서는 과대로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고생문도 훤하고 과대 아니라도 할일 많아서 끝까지 거부했었죠.
    덕분에 대학에서도 무존재감 (...)
  • 고선생 2011/12/23 20:40 #

    과대.. 하아 더더욱 관심에서 먼 그 자리. 물론 과대 일 하면 학교측에서 수고비 명목으로 어느정도 쥐어주는것 같기도 했지만..ㅎ 그래도 자유로운게 좋아요.
  • m 2011/12/25 11:43 # 삭제

    totally;;;ㅠ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