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분 by 고선생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맘때쯤, 한 해가 지는게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는 기본적으로 기분이 썩 좋질 않다. 아니, '기분 나빠'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활기가 없고 쓸쓸하고 아쉽고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닌 상태가 쭈욱 지속된다. 낮은 짧아지고 움츠러들게 되는 추위의 날씨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하는 환경적 요인도 그러하겠으나 본질적으로는 지금 이 해가 지나가버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기분을 휘저어놓는다.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참보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지남에 더욱 아쉽다. 가만 있어도 내년은 오는거지만 이렇게 떠나버린 올해는 그대로 과거로 흘러갈 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밀려드는 자잘한 후회들.. 이렇게 떠나버릴 올 해를 난 잘 과연 잘 보냈는가, 후회를 최소화할 수는 없는가. 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거창하게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빈다. 그 중 대부분이 새해 계획 세워봤자 거의 지켜내지 못하고 후회속에 올 해도 지나버리게 될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미 다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획이라도 거창하게 세워야 이루는것도 많을거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정반대. 언젠가부터 새해의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고 있다. 그냥 있어도 한 해의 저뭄은 아쉬운데 내가 뭔가를 스스로 계획한것도 다 이루지 못하면 얼마나 더욱 아쉽고 나 자신이 부끄러울 것인가. 계획 따위는 없다. 그럼 한결 홀가분하다. 무계획이였으니 한 해가 지나버릴 즈음에 한 해의 활동상을 돌이켜보면 '의외로 이러이러한 것을 해냈네!' 하는 것들이 짚인다. 계획하지 않았던 삶 속에 얻어낸 값진것들. 의외성이기 때문에 더 만족스럽다.

하지만 어쨋든 한 해가 저문다는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는 '없어져버리는것들'에 대해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이제 가면 돌아오지 않을 한 해도 그렇거니와 쉽게쉽게 끊겨버리는 인연, 새 제품 때문에 버리기 일쑤인 구형제품,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과거의 문화 이런것들.. 없어져버린다는것은 이미 내가 경험을 했었고 그 소중함을 맛본 것들이기에 더욱 아쉽다. 적절한 예가 될까 싶은데 난 실컷 갖고 놀다가 싫증이 난다고, 새거 나왔으니까 쓸모가 없다고 중고로 내다팔고 교환하고 그런 일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오래 쓰지도 않을테니 정도 별로 없겠지만 난 99년부터 지금까지 쓴 핸드폰은 모든 모델을 다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갖고 놀아온 게임기도 게임팩 형태에서부터 DVD 방식으로 게임기가 진화해올 때까지 새로 사는것은 그것들대로 다 그대로 있다. 중고로 내다팔거나 교환하거나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정'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돈 모아 산 소중한 물건이고 각기 다 나만의 추억이 깃든 그 물건들을 쉽사리 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창 쓸 때에 비해서 손대는 횟수는 현저하게 줄더라도 언제고 생각나면 다시 꺼내 볼 수 있고 아 그땐 이게 참 재밌었지, 이건 누구랑 재밌게 즐겼는데 하는 당시 당시의 추억들의 증좌 아닌가.

하물며 수많은 일이 있었을 1년을 떠나보내는것은 더욱 아쉽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 아쉬움에 쓸쓸함이 싫어서, 조금은 즐겁기 위해서 왁자지껄 연말이 되면 망년회다 뭐다 해서 사람들끼리 더욱 어울리고 그러면서 쓸쓸함을 감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분위기 조성으로 내면의 쓸쓸함을 조금은 가려볼 심산인걸까. 

그래서 내가 사진을 많이 찍고 블로그라는 기록매체에 손을 댄 것은 잘 한 일 같다. 오래전 쓰고 이젠 안 쓰는 제품, 물건은 그대로 보관하는것만으로도 가끔 다시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지만 나의 일상과 나의 한 해를 지낸 나의 모습들은 숱하게 찍어댄 사진들과 블로그의 기록들로서 추억할 수 있는 '꺼리'들을 만들어두었으니.

오늘도 여전히 뚜렷한 이유 모를 기분 다운에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이미 자체진단하는 글을 이만큼이나 써놓고도 사람 마음은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가보다. 복합적인 자잘한 이유겠지만 그 이유들의 대전제는 바로 한 해가 끝나고 있다 라는것에는 이의가 없다. 끝판왕이시다. 사람은 참 웃기는 존재다. 이렇게 쓸쓸해있다가 새해가 오고 다시 날이 따땃해지고 생명들이 활기를 되찾고 연말은 아직 한참 먼 시기가 되면 지금 기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쌩쌩해질것이다. 모두들 안다. 예상할 수 있다.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예상한다고 그 감정에 대비를 할 수는 없는게 인간이라는 존재같다. 알면서도 그 시기별로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정말 인간이란 웃기는 존재야. 어리석은 감성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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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12/13 08: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12/14 05:04 #

    감사까지..ㅎ
  • 곧은머리결 2011/12/13 11:21 #

    저도 그래요 기운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활기를 다시찾기 위해 자식을 낳나봐요..
  • 고선생 2011/12/14 05:05 #

    뭐 인생의 활력으로까지 거창한건 아니고 지금 이 시기에 쓸쓸하다는거니까요~
  • 2011/12/13 14: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12/14 05:06 #

    이젠 스스럼 없어졌군? ㅋㅋ 버튼 있어 왜~ 포스팅 아래 보면 페이스북 '좋아요' 만들어놨는걸.
    그래 좋은 친구지 :)
  • 라쥬망 2011/12/13 15:37 #

    저는 '으아 올해나 내년이나 다 똑같은 시간이다. 그냥 넋놓고 살자 으아아아' 하는 편이기는 한데. 사실 생각해 보면, 지나가는 시간 단 1초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란 차암 쓸쓸하죠.
  • 고선생 2011/12/14 05:07 #

    한 때 그러는것도 인생사 구성하는데 필요하기도 하죠. 그치만 사회에서 잘 어우러지고 살아가려면 지금 나이쯤 되면 넋놓으면 나중에 크게 당하더라구요 ㅎ 물론 저도 여전히 '계획성있게' 살진 않지만..
  • naregal 2011/12/13 17:14 #

    올해와 내년은...엄청난 차이를 가지겠네요,
    내년 7월이면 망할놈의 국가의부르심 퀘스트가 종료됩니다.
    -그리고 1년뒤 "차라리 군대있을때가 편했지"를 울부짖을것 같은 느낌-
  • 고선생 2011/12/14 05:09 #

    천지개벽의 차이일겝니다.
    그리고 1년 뒤까진 아니고 한 3년 정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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