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을 딛고, 늘 김치찌개가 최고의 반찬 by 고선생

어릴땐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7,80년대 이후 태생으로 풍요를 맛보고 커온 세대라면 어린시절 밥상에서 김치 먹기 싫어했던 분들은 꽤 있을것 같아요. 부드러운 서양식 이유식으로 입맛이 길들여지고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어머니들도 즉석식품이나 양식계열의 접하기 쉬운 음식들도 즐겨 먹이고 세상에 가득한 양식과 패스트푸드에 한번 빠져버린 아이들 입맛은 생발효야채따위에 눈길 주긴 확실히 어려워보입니다. 어린시절 잘 먹고 잘 큰, 게다가 독일생활까지 한 저 역시 지독한 편식쟁이였고 김치 역시 '어른들이나 먹는 음식, 나와는 상관없는 음식' 정도로 여기곤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찌개는 먹었습니다. 물론 김치는 골라내고 두부와 고기(또는 햄) 등 김치를 제외한 건더기만 골라먹는 맛으로 좋아한거였죠. '먹었다'는거지 좋아했던 음식까지는 아닙니다. 하물며 맵고 낯설은 생야채의 질감이 있는 생김치는 입에도 안 댔어요. 김치뿐이 아닙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음식들로 인해 제가 고기를 좋아한다는거야 이미 밝혀진 상태건만, 그럼 어릴때 고기도 잘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고기' 중에선 유일하게 먹는건 닭고기 뿐이였습니다. 쇠고기, 돼지고기도 잘 먹을 줄 모르고 제맛도 모르는 편식아였어요. 스테이크도 함박스테이크나 좋아했지 요새 즐기는것처럼 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스테이크는 기겁을 했죠. 엄밀히 말하면 고기도 먹을줄 모르고 그냥 햄이나 소세지 등의 육가공품만 좋아했습니다. 또는 다진고기 식품만요. 맛도 맛이지만 어릴땐 조금이라도 질감이 느껴지는건 뭐든지 꺼려했던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편식증은 지속되다가 학창생활을 하면서 반강제적으로 급식이란걸 경험하면서 그걸 먹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것저것을 먹어보다보니.. 그제서야 어 이런음식도 있구나 저런 음식도 먹을만 하구나 하는 맛의 신세계를 조금씩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김치를 입에 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먹기 시작한게 중학생 즈음, 그리고 완벽하게 김치를 거부감없이 먹기 된게 고등학생 때입니다. 골고루 먹는 음식의 조화로운 맛을 알아가고 그 전까지 내가 얼마나 한심한 식생활을 고집했는가도 느끼게 되었지요. 그리고 스무살 넘어서는 거의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개고기처럼 신념상 입에 안 대는 음식 빼고는, 그리고 곤충 등의 개인적인 혐오음식도) 편식은 완벽히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야채뿐인 비빔밥도 잘 먹게 되었고 동전만한 고기 살점도 상추를 두장이나 겹쳐 싸먹을 정도로 생야채도 즐기게 되었고 김치는 입맛이 돌 땐 한 끼에 거의 반 포기를 해치울 때도 있을 정도로 애식품이 되었죠. 고기편식도 완벽히 사라져 지금처럼 모든 고기를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쨋든 김치를 좋아하게 되면서 김치와 관련된 음식도 좋아하게 되었죠. 기본 김치인 배추김치 외에 깍두기, 총각김치, 동치미, 깻잎김치 등 다른 종류의 김치도 찾아먹게 되고 김치전, 김치찌개 등 김치요리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어느덧 한식밥상 차림 식사에서 김치가 없으면 너무도 허전하게 느낄 정도로 김치는 저의 마음 한켠에 굳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집엔 김치냉장고속에 1년 내내 맛있는 김치가 떨어질 날이 없는 '당연한' 음식이지만 독일에 와서는 김치가 없죠. 한식품점에서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일단 사먹는 김치는 제 입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그 가격을 본다면 사먹으라는 속편한 말씀 못하십니다. 결국 스스로 담그는게 상책입니다. 제가 김치 담가 먹고 산다는 얘길 꺼낼 때마다 어떻게 김치를 담그느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근데 그런 의아함은 순전히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받는 질문이 아닐까 해요. 보통 김치란 음식이 집안에서 여자들 담당이잖습니까. 어머니들께서 많이 수고하시는 편이죠. 유학 와서는 김치 담가줄 어머니가 없으니 제가 담그는건 어찌보면 당연한건데 말이에요. 그리고 김치 담그는게 그리 어려운게 아닙니다. '귀찮을' 뿐이죠. 한국에선 김장이라고 해서 김치 담글 때마다 대규모로 판을 벌여놓고 수십포기씩 담그니까 중노동처럼 인식되지만 혼자서 소용량 냉장고를 쓰면서 혼자 먹을 김치를 담그는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음식 특유의 갖은 양념을 준비하는 잔손이 많이 가고 배추를 절이고 하는 시간도 좀 걸리고 그러는게 '귀찮을' 뿐, 양념조합해서 절인 배추와 섞으면 완성되는게 생김치요, 그게 익어가면 신김치가 되는겁니다.

김치는 늘 필요한 음식이자, 없으면 밥 먹기 애매해지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김치찌개를 언급했는데 생각해보세요, 김치찌개를 제외한 모든 '찌개'는 바로바로 수퍼에서 해당재료 사다가 된장찌개면 된장을, 고추장찌개면 고추장을 풀어서 바로 끓이면 완성되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김치찌개는 김치가 없으면 불가능하죠. 게다가 그냥 김치도 아니고 한참 전에 담가서 적당히 익은 김치여야만 맛난 찌개를 끓일 수 있습니다. 그 희소성 때문에 저에게 김치와 김치찌개는 늘 귀합니다. 그냥 밥과 먹는 김치도 좋지만 찌개끓인 김치는 근사한 요리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어떤 찌개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게 바로 김치찌개입니다. 그 숙성된 김치가 우러난 맛은 장맛보다도 더 맘에 들어요.
올해 부모님이 독일에 놀러오시면서 자연히 김치가 다시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침 김치가 떨어졌는데 어머니와 함께 김치를 담갔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도 아들과 김치를 담글 날이 올거란걸 예상이나 하셨을까요 ㅎ 제가 김치 담그는 방법도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은거고 늘 그렇게 따라서 하는데도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김치는 제 김치보다 훨씬 맛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미스테리에요. 똑같은 배추 사다가 똑같은 양념들 써서 만드는데. 재료의 배합비율? 어머니의 감? 함께 만들었음에도 종전 혼자 만들던 김치보다 훨씬 맛있게 된 결과물에 폭풍감동과 함께 이틀동안 상온에 놔뒀습니다. 냉장고가 쪼그매서 얼마 많이 만들지도 못했고 근시일내에 다시 김치담가야 할테지만 일단 오랜만의 김치인만큼 일부는 빨리 익혀서 찌개를 끓이고 싶었거든요. 김치찌개 한 냄비 끓일 분량의 김치만 고속익힘을 위해 꺼내두었더니 금새 신맛이 납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1주일간을 더 묵힌 후.. 보란듯이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김치찌개와 더불어 어머니의 밑반찬 그리고 밥. 최고죠.
고추장건새우무침과 껍질콩과 고추와 함께한 멸치볶음. 어머니의 밑반찬도 저에게는 진수성찬입니다.
그리고 이 김치찌개! 찌개는 제가 끓였습니다. 돼지목살과 두부와 함께 끓인 푹 익은 김치찌개. 참, 다른 된장찌개같은건 건더기에 가끔 변화를 주지만 김치찌개는 전 늘 원패턴입니다. 돼지고기, 두부, 김치. 딱 이 조합. 그 조합에서 절대 변화를 주지 않아요 이 조합이 제가 생각하는, 제 입맛에 딱 맞는 '완벽한 김치찌개'입니다. 평소 여러 음식을 만들어서 끼니를 때우지만 김치찌개와 함께 밥먹는 날이면 그 날은 최고의 밥상이에요. 김치찌개는 유학중인 제게 있어 최고의 반찬이라 할만합니다.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아도 밥 두 공기를 해치울 수도 있을거에요. 한 냄비 가득 끓여 서너끼는 먹을 수 있었던 김치찌개. 정말 간만이고 반갑고 너무 맛있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 김치는 안 먹겠다고~ 안 먹겠다고~ 편식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젠 김치를 좋아하고 무려 김치찌개를 최고의 반찬이라고 이 긴 글을 쓰는 시절이 되었네요. 격세지감입니다. ㅎㅎ

핑백

  • 고선생의 놀이방 : 2011년 8월 2011-09-17 04:01:47 #

    ... 욕 강했던 담임선생님새 신발문득 떠오른 허무함현대 한국의 비극적인 사고가 났던 그 때미니앨범 이 달의 음식 제이미 올리버의 퍼펙트 스테이크. 완벽한 맛!편식을 딛고, 늘 김치찌개가 최고의 반찬부침개중에 이게 왕. 녹두빈대떡치즈크러스트 불고기 브로콜리 피자타이 레드커리를 맛있게 먹고서 집에서 재현과정은 초간단. 기다림의 맛. 어니언수프 ... more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1/08/11 09:21 #

    유학하면 어머니 손맛과 밥상이 더 그리운 법이지요. ^^

    맛있는 식사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 고선생 2011/08/11 17:59 #

    제가 아무리 용써도 어머니의 맛은 다르네요! ㅎ
  • Fabric 2011/08/11 09:55 #

    김치에 얽힌 사연이 길어 그런지 오늘은 글이 기네요 ㅎㅎ 이런 포스트 보면 고선생님 이야기하시는 능력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김치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한번씩 잘 끓인 김치찌개 생각이 나죠 한국 사람이라면 다 그러려나요 남은 김치도 맛있게 드시길 :)
  • 고선생 2011/08/11 18:00 #

    이번엔 일반적으로 음식포스팅이라기보단(음식과정 등) 그냥 글의 성격이죠 ㅎㅎ 늘 그렇지만 주저리주저리~입니다.
    전 이젠 김치를 무지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을 정도..
  • 라쥬망 2011/08/11 12:06 #

    반찬이랑 찌개랑 정말 맛있어 보여요!! 저도 김치 요리가 정말 좋아여.... 김치말이국수랑 오징어 넣고 김치전,,하악.
  • 고선생 2011/08/11 18:02 #

    김치를 사용한 요리 중에선 맛없는게 전혀 없어요. 그 모든게 어떤 재료보다 김치의 맛을 가장 크게 돋보이게 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
  • tryst 2011/08/11 12:26 #

    으앙 침 고여요!!!
  • 고선생 2011/08/11 18:02 #

    맛있는 김치찌개 해드세요~
  • 스무스케어 2011/08/11 13:24 #

    그러게 김치 싫어하는 사람들 주위에 은근히 있는 것 같아요. 전 커가면서 편식쟁이가 되네요 ㅎㅎ
  • 고선생 2011/08/11 18:02 #

    어린이들 중엔 꽤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
  • Mushroomy 2011/08/11 13:31 #

    제 동생도 김치 안 먹고 살 수 있다던 놈인데, 학교 내려가서 자취하며 살다 보니까, 김치 한 병 담가서 갖고 내려가면 그날 식탁에 올라온 김치가 거짓말 좀 보태서 광속으로 사라집디다;;; 나중엔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야채로 김치를 많이 담가 달라고 했지만,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입맛도 변하나 봐요.

    저랑 아버지도 처음엔 한인마트 가서 김치 사다 먹었는데, 어느 사이 들큰한 조미료 맛에 질려서 다음부턴 아버지랑 둘이서 담가먹게 됐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담궈주신 맛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 맛나게는 먹었지요. 근데, 한 번 담가먹기 시작하니까 사 먹질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제 어머니 만큼이나 김치를 담글 수 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 고선생 2011/08/11 18:05 #

    커가면서 입맛이 변하는거겠죠. 누구나 입맛이 초지일관한 경우는 없는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지독한 편식아였다가 이렇게 변모했는걸요 ㅎ 비단 조미료 문제뿐이 아니더라도 김치는 각자 자기네 집 김치가 가장 입에 잘 맞는 법이죠. 사먹는거 아니더라도 남의 집 김치도 내 입에 어색한것처럼..
  • aascasdsasaxcasdfasf 2011/08/11 15:29 #

    나트륨 함량이 높을거같은 식단이네요..
  • 고선생 2011/08/11 18:05 #

    네 참 맛있겠죠?^^
  • 달꽃 2011/08/11 18:35 #

    어릴때 김치 맵고 신맛이 강해서 물에 씻거나 안먹었는데 군침이 도네요. 김치찌개도 좋고 김치전도 최강이에요.
  • 고선생 2011/08/11 19:10 #

    어린이 입맛에 아무래도 김치도 강한 맛이겠지요. 좀 커야 그 맛을 아나봅니다 ㅎ
  • shic 2011/08/12 02:04 #

    헐...저보다 더 잘해먹고 사시는군요;;이런..부끄러울 때가...땀 삐질;;
  • 고선생 2011/08/12 05:40 #

    아니에요 ㅎㅎ; 이런 평범밥상을..
  • 2011/08/12 06: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08/12 08:19 #

    김치찌개는 매일 먹어도 안 질릴것 같음.. 사랑함!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