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 강했던 담임선생님 by 고선생

중 1때의 일이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역시 초등학교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는 선생님 시스템일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지만(음악, 실과같은 과목은 전문선생님이 있는 경우도) 중학교부터는 담임선생님은 있지만 그 분도 한 과목의 선생님이고 과목별로 다른 선생님들이 교실로 들어오는 시스템. 중1 새내기인 내게는 그게 가장 신선하면서도 어색함이였다.

나의 중1 담임선생님은 체육선생님이였다. 명문대 체대를 나온 파이팅 넘치고 카리스마 있던 20대의 젊은 선생님. 누구에게나 보여도 부러움을 살만한 그 대학교명이 써진 학교티를 즐겨입으시던 분. 체벌도구로 하키채를 소지하고 계신 분. 사실 정답기만 하던 초등학교 분위기에서 중학교에 들어가자마 군기 잔뜩 든 그 분위기가 참 무서웠다. 게다가 담임은 체육선생님. 중1 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기합과 체벌이란걸 경험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극기훈련같은거나 가야 거기 조교들에게 받던 기합인데 중학교부터는 기합과 체벌이 일상이였다. 우리 교실은 더군다나 담임선생님의 근거지인 체육실 바로 위층에 위치하고 있어 떠드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며 벌을 받고 창 밖으로 쓰레기가 떨어지는걸 봤다며 기합받고 뭐 그러기 일쑤였다. 우리반이 전체에서 시험성적 꼴찌를 했을 땐 엄동설한의 겨울에 교복마이를 벗고 셔츠만 입은 상태로 체육실에서 보이는 위치의 운동장에 모두 모여 업드린 상태에서 체육실 안의 선생님의 감시 하에 운동장 허허벌판에서 찬바람 맞으며 기합을 받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당시 배웠던 서양사의 '카노사의 굴욕'을 언급하자 다들 웃음이 터져서 웃는다고 정신 못 차렸다고 맞지 않아도 될 하키채 타작을 당한 적도 있다. 우린 언제나 긴장속에 학교생활을 해야 했으며 순박한 여선생님이 담임으로 있는 반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가을 운동회 시즌 때. 반에서 각각 잘 뛰는 애 계주 시키고 뭐 그런거 뽑는 준비기간. 선발된 운동 잘하는 애들이나 고생하고 나머지는 응원하거나 멍때리면 되면 그만인 운동회. 하지만 유일하게 모든 반 애들이 다 참여해야 하는 단체경기가 있다. 박 터뜨리기와 줄다리기. 특히 줄다리기는 요새 화제인 무한도전 조정마냥 선수의 배치도 중요하고 리듬도 잘 맞아야 하는 나름의 법칙이 있는 단체경기. 사실 이것도 중1때 담임선생님한테서 처음 알게 된 나름의 과학(?)이다. 그 전까진 그냥 떼거지로 잡아당기는건줄 알았거든. 어느날, 선생님이 조례를 할 때 오늘은 학교 끝나고 다들 가지 말라고 협박(?)하셨다. 대체 뭐지 하는 마음에 다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다른 반에서 찾아오는 같이 가자는 애들 다 먼저 보내고 조용히 교실에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셔서는 하시는 말씀이 "오늘은 약 한 시간 동안 줄다리기 특훈을 한다!"
.......특훈? 줄다리기 특훈..? 그러면서 줄다리기란게 단순히 잡아당기는것만이 아닌, 나름의 요령과 선수배치의 치밀함 등이 조화가 되어야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내가 위에서 언급한 그 내용을 설명하시고 "야이 명색이 체육선생 담임인 반 애들이 운동회 성적이 낮으면 말이 돼!?"며 특훈을 하자고 하신다. 당시 줄다리기가 가장 배점이 컸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개인전은 개개인의 능력이니 어쩔 수 없지만 우리반이 이렇게 단결이 잘 되는구나 라는걸 보여줘야 한다신다. 어리둥절했지만 다들 운동장 밖으로.

어느새 학교 제일 큰 고목나무에 밧줄까지 묶어놓으신 우리 선생님. 그리고 맨 앞부터 맨 뒤까지의 선수배치를 직접 하신다. 당시 좀 미리 성장해서 키도 덩치도 가장 컸던 내가 맨 앞 1번선수, 그리고 가장 키 작고 왜소한 녀석이 맨 뒤. 그리고 난 선생님의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내게 해주신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네가 엔진이다!!"

그렇다. 난 우리 1학년 3반의 엔진이 되었다. 내가 가장 큰 힘을 내야 하고 가장 열심히 해야 하는 막중함. 난 결의에 찬 목소리로 "예!!" 했다. 그 순간만큼은 뭔가 큰 짐을 짊어진다는 책임감에 불타올랐고 우리반을 구할 구세주인 마냥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리고 아마 그 때 난생처음 줄다리기의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초반에 모두가 한 동작으로 열심히 땡기고 땡기다가 나중에 가서는 버티기. 그리고 맨 마지막이 궁극의 '눕기'! 그렇게 호흡을 맞추는 줄다리기 특훈을 우리는 3일간이나 했다. 운동회 바로 전 날까지. 마지막 방과후 훈련이 끝나고 선생님의 특별 주문 사항이 있었다. "상대 반의 전체적인 완력이 더 강할 경우 아무리 버티고 누워도 끌려가면 패배한다. 그러니 너희는 등산화를 신고 와라!" 그렇다. 등산화처럼 미끄럼 방지 신발을 신고 오라는 하나의 전략! 그 때 이미 분위기 탈 때로 타버린 우리들은 우리 선생님 천재라며 감탄하고 막 그랬다 ㅋㅋ

드디어 운동회 날. 그리고 줄다리기 순서. 공포의 외인구단 마냥 눈에 잔뜩 힘 주고 1학년 3반의 용사들이 나간다. 손바닥 다치는걸 방지하기 위한 목장갑을 끼는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도 간지가 흘러넘친다. 그리고 '엔진'인 나는 줄의 맨 앞에 서서 맞은편 상대 반의 '엔진'녀석을 노려보며 홀로 영화주인공이 된듯 몰입하기 시작한다. 심판 선생님의 총이 하늘로 향하고.. 탕!! 일제히 으쌰으쌰 당기기 시작한다. 대단한 접전이다..! 크악 나무에 묶어놓고 할 때완 달라! 엄청난 압박이다! 크흑.. 줄을 놓치면 안돼!(너무 몰입했다) 초반 접전이 이어진 후 다음 단계, 버티면서 끌어당기기. 어 그런데 신기하다. 방금전까지도 접전을 펼치던 상대방이 눈에 띄게 이쪽으로 끌려오는 기분이다. 우리가 당길 때마다 우리쪽으로 쭉쭉 따라온다. 이.. 이것은 신발이다! 우리의 신발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어!! 걱정할 필요 없다! 다들 누워!! 그리고 비장의 마지막 단계, 눕기! 그대로 무너져버리는 상대 반. 상대 반 '엔진'녀석이 무기력하게 앞으로 고꾸라지며 질질 끌려오는 장면을 난 분명히 목격했다. 그의 가슴이, 그의 배가 운동장 바닥에 닿아 하얀 체육복이 황토색으로 변하는걸 난 보고야 말았다고! 그렇게 1차전은 여유롭게 우리 반 승리.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승리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진 경기에서도 우리반은 한번도 밀리지 않고 파죽지세로 연승에 연승을 이어나가 결국 한번의 패배도 없이 그대로 우승하고야 말았다..!

다른 경기에서는 우리반이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건 없었지만 줄다리기는 우승. 우리 반이 전체 성적으로 몇 등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줄다리기 특훈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결과였다. 운동회가 끝나고 교실에 모여 우리반은 축제분위기. 특히 특훈 시키질 잘 했다는 선생님의 만족감 어린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께 당당히 외쳤다.

"선생님! 전 아버지 골프화 신고 왔어요!"

그리고 보여드린 신발 밑창. 등산화를 신고오라 주문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등산화를 갖춰 신고 온건 아니였다. 한 반 정도만? 그런데 내가 신고 온 신발은 골프화. 등산화와 비교할 수 없는, 밑창에 압정이 박혀져있는 그 신발. 미끄러질래야 미끄러질 수가 없는 그 신발! 선생님은 감탄하셨다. 역시 너는 엔진이라고! 그리고 줄다리기 특훈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몰입했던 것 같다. 반드시 이기리라는, 나는 우리반의 엔진이라는 사명감과 함께. 등산화를 신고 오랬지만 난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아빠 골프화를 찾았다. 등산화보다 그게 훨씬 효과있겠다는 생각이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몰입했다 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추억인데.. 방과후 특훈까지 시켰던 담임선생님의 승부욕이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고도 생각되고.. 지금 내가 당시 선생님의 나이보다 한참 더 들고 보니 귀엽단 생각이 밀려온다 ㅋ 우리 1학년 3반은 그 날의 줄다리기 최강자였다. 이미 어중이떠중이들과는 견줄 수 없는 체계화된 작전과 특훈으로 기른 서로간의 호흡이 있었다. 우리는 승리자였다.




핑백

  • 고선생의 놀이방 : 2011년 8월 2011-09-17 04:01:44 #

    ... 이 달의 읽을거리 승부욕 강했던 담임선생님새 신발문득 떠오른 허무함현대 한국의 비극적인 사고가 났던 그 때미니앨범 이 달의 음식 제이미 올리버의 퍼펙트 스테이크. 완벽한 맛!편식을 딛고, 늘 김 ... more

덧글

  • 라쥬망 2011/08/02 22:40 #

    으앜ㅋㅋㅋ엔진에 골프화ㅋㅋㅋㅋㅋ재밌어여ㅋㅋㅋㅋ 1학년 3반엔 건실한 담임선생님 이하 정열맨들만 모여있었군요ㅋㅋㅋㅋ
  • 고선생 2011/08/03 07:08 #

    정열맨 ㅋㅋ '특훈'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뭔가의 특별함! 혈기왕성 중1짜리에겐 몰입할 만하죠 ㅋ
  • smilejd 2011/08/03 01:16 #

    ㅋㅋㅋ
  • 고선생 2011/08/03 09:37 #

  • naregal 2011/08/03 10:11 #

    바,반칙이잖아요!!!
  • 고선생 2011/08/03 17:26 #

    에이 뭘요. 금지사항 있는것도 아닌데 ㅋㅋ
  • Warfare Archaeology 2011/08/03 13:01 #

    하하하하하! 보면서 저도 비슷한 기억에 완전 넘어갔습니다. ㅋㅋ 잘 봤슴다~~
  • 고선생 2011/08/03 17:27 #

    설마 방과후 특훈을..? ㅋㅋ
  • Warfare Archaeology 2011/08/03 18:32 #

    ㅋㅋㅋ 저도 중1때 체육샘.

    어쩜 끌려가서 처음으로 단체 빠따 맞은 기억하며, 성적갖고 맞은 기억하며...똑같은지. ^^;;
    심지어 욕심많은 우리 담임 환경미화에서도 1등 못 했다고 빠따를. 쩝...-.-;

    달리기랑 이것저것 특훈한 것도 비슷하구요. ㅋㅋ 혹시 같은 쌤??? ㅋㅋㅋ
  • 미니벨 2011/08/06 22:57 #

    신발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보통 장갑은 생각을 하는데.
    장갑 끼고 안 끼고가 꽤 큰 차이를 보이더라구요.
  • 고선생 2011/08/06 23:14 #

    장갑은 줄다리기 하는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아이템이였습니다 :) 손 다치면 안되니까요.
  • 우왕 2011/08/07 03:26 # 삭제

    글재주가 잇으시네요 ㅋㅋㅋ몰입도가 굿ㅋㅋ
  • 고선생 2011/08/07 03:54 #

    ㅋㅋ 감사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