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 말자 by 고선생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즉흥적인 눈물이였다.
고된 비행을 마치고 다시 독일땅을 밟고 내 기숙사 방으로 들어와 털썩 쓰러지니 나도 모르게 난 울고 있었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순간의 울컥함은 늘 마찬가지지만 내가 그 때 울면 부모님이 가슴아프실것 같아 잘 참았다. 잘 했다. 하지만 이 눈물은 뭐지.

이번 한달 조금 넘는 한국 방문은 나에겐 휴가 이상의 큰 의미가 있었다.

어쩌면 난 독일에서 강하게 혼자 잘 버티며 살고 있던게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속이며 난 괜찮아 괜찮아 최면을 걸며 살고 있던게 아닐까. 사실 강하지도 않은데 그냥 오래 있다보니 그게 익숙해진것일뿐, 오래 나와있던, 하지만 계속 어미주머니속이 그리운 새끼캥거루에 불과했던게 아닐까. 한국에 있는동안 오랜동안 잊고 있던 '당연한 것들'에 다시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독일에서 그나마 단련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들이 죄다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였다. 물론 작정하고 쉬러 온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되면 밥 생기고 더러워지면 청소가 되고.. 그런 가족들의 수고를 난 너무 당연하게 받아먹고 있는것이였다.
그 누구도 반겨주는 이 없는 이 땅, 게다가 우중충 회색빛에 금방이라도 비올 것 같은 하늘, 편한 내 침대와 널찍한 책상이 있는 우리집 내 방이 아닌, 좁디좁은 단칸방에 좁아터진 책상과 초라한 넓이의 침대, 그리고 한달간 비워진동안 쌓인 먼지들. 비몽사몽 정신없이 비행기 타고 온 독일 땅은 너무나 어제처럼 익숙했고 조금의 헷갈림도 없이 바로 기숙사로 왔다. 1달간 한국에 있었다고 어색한건 전혀 없다. 결국.. 지금 나의 현실은 이것이로구나 하는.. 그 달콤한 시기 동안의 모든 것들이 단 하루만에 신기루처럼 없어져버리고 다시 냉정한 이 곳에 외톨이가 되었다는게 몸이 자동으로 느끼고 그렇게 서러웠나보다. 늦잠 잘 자고 집밥 먹고 어영부영 하다보니 공항, 비행기 타고 오니 독일. 너무나 빠르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그 갑작스레 공허해짐과 순식간의 상실감.. 

또 앞서 말한대로 이번 한국행은 단순한 휴가뿐인건 아니였다. 3년만의 방문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장소들을 환골탈태되어 있어, 마치 한국사람임에도 한국 관광인양, 새로운 것들, 새로운 재미가 풍부했다. 방구석에서 비비적댄 날보다 나가 돌아다닌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거의 매일 나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리고.. 그런 외출의 원인은 관광 뿐만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도 컸다.
사실 난 독일에 있으면서 혼자의 시간을 많이 보내며, 이것이 편해, 공부하는데 이 외의 것들은 방해요소일뿐! 난 내 할거 하면서 잘 살면 돼. 라는 주의였다. 그치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외로웠나보다. 가장 그리운건 사람이였다. 가족도, 친구도.. 날 알고 있고, 나에게 애정을 주는 많은 사람들. 한국에서 있었다면 몸은 떨어져있다 해도 같은 하늘 아래 있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난 사실 담담한척 하고 있었을 뿐, 누구보다 외로웠나보다.
사실 블로그란것도 그래서 시작한것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이 그립고 그 원동력 하나만으로 열심히 꾸려왔고 반응을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 그래서 이번 한국행 때 용기를 내어 많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분들도 만나뵙길 청했던것이고.. 그 만남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고 만난 분들 역시도 너무나 멋진분들 뿐이였기에..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더 오래 뵙고 싶은 분도 있고. 

남들은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데 나는 반대인것 같다. 독일에 있는동안은 별다른 생각 없었는데 이번에 한국에 가면서 한국만세를 제창하게 된 꼴. 직접 경험해 본 한국(이라지만 거의 서울)은 내 예상이나 기대보다도 훨씬 발전했음을 느낀다. 오래 안 보다 보니까 확실히 더 느껴진다. 단점도 여전하지만 반가움에 코팅된 내 시선으로는 장점도 더 보인다. 버스전용차선은 여전히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광화문광장은 뭐 저런걸 만드냐는 생각이였지만 막상 실제로 보고 걸어보니 꽤 괜찮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였고 지하철 9호선은 획기적이였으며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세계최고인것 같다. 미적 감각은 여전히 떨어지지만 그래도 전통미를 굳이 제껴보자면 '디자인서울'은 그럭저럭인듯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미 쪽으로 좀더 살렸음 하는 아쉬움은 있다. 3년전엔 안 보이던 카페베네가 여기저기 우후죽순 싼티나게 입점해있는건 좀 꼴사나왔고 어릴적 동네가 고층아파트들이 세워지면서 '아예' 딴모습이 되어버린건 많이 안타까웠다. 지하철에서 사람 내리기 전에 먼저 올라타고 보는 비매너는 사라져버린건 아니였다. 뭐 그건 독일에서도 가끔 보이니 그런 사람 소수의 문제이려나. 점심특가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싸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장점, 치킨공화국 한국답게 맛난 치킨이 가득한건 진정 부러웠다. 등등...

하지만 역시 가장 날 기쁘게 한 것도, 날 설레게 한 것도, 그리고 떠나면서 아쉽게 한 것 역시도 사람이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설레임. 그 기대감, 그리고 만났을 때의 즐거움과 기쁨. 그 만남과 만남들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일상처럼 굳어지려던 찰나, 나의 그 모든 패턴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지금 차가운 단칸방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여행가방 짐들이 나동그라진 상태에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린 뒤 조금 후련해진 가슴을 다독이며 키보드를 잡았다.

어찌되었든 꿈같은 한달이 지나고 나에게 주어진 건 그 전과 다름없는 고달프고 외로운 현실바닥. 그리고 주어진 목표와 과제들. 약해질 수는 없다. 분명 난 당분간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그리워할테지만 절대로 거기에서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수는 없는 일. 다시 예전처럼 묵묵히 달리자. 소통의 수단은 인터넷 뿐, 달리 없다. 블로그도 다시 열심히 하고 많이 소통하고, 그렇게 위안받고, 난 계속 달려나가야겠다. 앞으로의 여정은 한국 가기 전보다 훨씬 가파르고 험한 길 투성이일 것이므로. 그리고 그 길을 완주해서 목표함을 이루고 좀더 멋있어졌을 때.. 다시 한국으로 가자. 한국으로 가서.... 행복하자. 지금 약해지지 말자.

p.s
당분간은 한국 경험담 위주의 포스팅이 이어질 것 같네요 :) 사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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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3/19 15: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03/21 02:11 #

    '냉정한 당연함'에 서러워진 심정일까요.. 그냥 계속 있었으면 난 그냥 강하다는걸로 어떻게든 살았을텐데 한번 행복을 경험하고 오니 더없이 아쉬움이 큽니다. 모쪼록.. 함께 힘내도록 하지요..!! :)
  • 한다나 2011/03/19 16:51 #

    ㅠ_ㅠ 네이트온이나 스카이프 안 들어오세요?
  • 고선생 2011/03/21 02:12 #

    반가워^^
  • 밤비마마 2011/03/19 17:13 #

    한국 3년마다 변하는거 맞죠?
    제가 4년전에 갔을때와 작년에 갔을때가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 고선생 2011/03/21 02:14 #

    3년이 주기였나요? 어쨋든 3년만의 방문이긴 했는데..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 모모 2011/03/19 18:22 #

    토닥토닥...
    한달이 참 짧았겠어요... 혹시 더 오래있었다면 다시 가고싶어졌을지도 몰라요.
    이제 독일도 봄이오고 따뜻해지고 낮고 길어지고 그러겠지요?
    힘내세요 꿈을 위해서! :)
  • 고선생 2011/03/21 02:16 #

    고맙습니다..ㅠㅠ
    이번 한국 방문으로 난 여전히 약하구나라는걸 깨달아버렸네요.
    다시 최면을 걸어야겠어요. 난 강하다 난 강하다..
    그리고 다시 힘낼게요!!
  • 2011/03/19 20: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03/21 02:18 #

    그래도 뭔가 그쪽에 있으면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고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는 심적인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이 먼 곳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해. 아닌가..?ㅎ; 이제 큰 업적 마치기 전엔 가지 말아야지.. 맘만 약해져서.
  • una 2011/03/19 22:45 #


    저는 일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3일이 남았습니다. 짧은 일년이었지만 참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처음부터 1년후에 돌아갈걸 알고 시작한 타지생활이라 힘들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생활이 그리워질 날이 분명 올거야! 오늘을 즐겨야해'하며 힘을 얻었어요 ^~^ 외로움과 고독도 즐겨버리세요! (너무 가혹한 위로인가 ㅠㅠ) 빠샤빠샤!
  • 고선생 2011/03/21 02:20 #

    갈 곳과 마칠 시간이 정해져있는 시한부의 타국생활은 그래도 그 끝이 분명하기에 그 날을 바라볼 수 있죠, 전 기약이 없네요.. 아마 그 힘들다는것도 좀 다른 감정일것 같습니다. 곧 가신다니 시원섭섭하시겠어요. 전 외로움도 고독도 즐겨버리기엔 2007년부터 시작된 여정인지라 즐길건 다 즐긴듯 하네요..
  • 풍금소리 2011/03/19 23:13 #

    독일 돌아가셨군요.(돌아-라는 글자를 써야 할 것 같아요)

    데이트신청 한번 해볼까,했는데 뒷북이었습니다그려.
  • 고선생 2011/03/21 02:20 #

    신청해주시지 그러셨어요 :) 조금만 일찍..
  • 2011/03/20 00: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03/21 02:21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이 말 외엔 드릴 수 없는 큰 격려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breeze 2011/03/20 02:07 #

    ^^
  • 고선생 2011/03/21 02:23 #

    싱긋 :)
  • 2011/03/20 06: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1/03/21 02:24 #

    돌아갈 날이 보장된 외출은 그래도 나을거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좋은 경험과 추억 많이 쌓길..
  • 민짱 2011/03/21 09:45 #

    저도 잠시 외국에 나가있을 때 향수병때문에 많이 고생했었어요.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씀은..... 정말 안괜찮은데 난 괜찮다괜찮다 최면 걸고 살았었다는 그런 말씀.... 맞아요. 그러다가 사람 만나니까 그 어느 사람보다 혼자 신나서 막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 집에 오면 어쩐지 계면쩍고 부끄럽고...

    진짜 이 사회는 더불어가는 사회인것 같긴 해요. 이제 덧글도 자주 남기고 고선생님 응원도 더 많이 해드려야겠어요....
    외로운 타국 생활이지만 들어오면 또 그때 그 시절이 참 그리워지거든요..... 그런데 뭘 하든 후회는 꼭 남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귀중한 경험해볼 때는 이것저것 머리로 따지지 말고 다 경혐해 보세요..... 독일에서 13년 생활하신 모 교수님도 그러시던걸요. 뭘..... 그 교수님은 그 외로움을 못견디고 결혼하셨다죠. 아마... ㅋㅋ

    제가 외국 갈 때 누군가 그랬어요. 네가 하는 그 경험을 남들도 100%한다고 생각하지 말그라... 넌 남이 겪을 수 없는 정말 최고의 경험을 하러 가는 길이니까.... 고루하져... ^^
    근데 그말 정말 맞는 말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즐거운 생활하시고...

    우리 자주 만나서 소통해요. 화이팅!!
  • 고선생 2011/03/21 16:45 #

    소중한 공감, 소중한 격려 모두 고맙습니다..!
    외국생활하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토로할 때마다 저도 말버릇처럼 그런 경험 흔치 않은거야, 있을 때 경험 많이 해둬, 나중에 후회해.. 등등 모범적인 해결방안을 많이 제시했는데 분명 그건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외로움 역시도 강하다는걸 전 이번에 제대로 직시해버린것 같아요. 또 익숙해지고 그러면 무덤덤해지고 괜찮아지겠지만.. 한번 크게 외로움을 '깨달아버려서' 그런지 아직은 회복중이네요.. 또 외국생활이란게 귀국이 정해져있는 시한부인거랑 기약없는거랑은 느끼는 바가 또 다른것 같아요. 그 막막함이 더 저를 조이나봅니다. 하지만, 다시 힘내겠어요! 고맙습니다^^
  • snm94 2011/10/02 21:54 # 삭제

    고선생님 글 잘 읽었어요 매일 고선생님 글 읽으면서 고3인 저는 많은 위로를 받아요 ^^
    이렇게 짧게 나마 글 올립니다 ^^ 많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해요
  • 고선생 2011/10/02 21:56 #

    자주 오세요 :) 힘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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