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사망 by 고선생

오래 쓴 우리집 TV 이야기다. 저번주에 우리집 TV가 갑자기 코마상태에 돌입했다는 소식..; 아예 안 보이는건 아니고 화면이 3중 잔상으로 보인다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 마침 한국대 우루과이 16강전이 있던 날이라 부모님은 급히 할머니댁으로 가서 함께 경기를 보셨단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집 TV는 현재까지 두번을 썼다. 독일에 가서 썼던 TV.. 이건 한국에 와서 2000년까지 무려 15년 정도를 썼다. 15년 정도 쓰다보니 2000년의 어느 날, 갑자기 화면이 꺼지며 속에서 자연발화가 일어났다. 멀뚱히 TV보다가 불을 목격한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일단 진화.. 가만 냅뒀으면, 집에 아무도 없었으면 불 날뻔한 시추에이션...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스스로 불을 지피며 죽어버리다니.. 15년 쓰면 이러는거야? 이러기야? TV는 어쨋든 필수가전이니 바로 새 TV를 물색했다. 당시부터 슬슬 16:9 화면 TV가 나오던 시절인데, 우리집 새 TV는 프로젝션 TV가 되었다. 이젠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위엔 스크린, 아래는 스피커가 붙은 거대체.
요런 놈으로(www.3013.co.kr/.../item.php?it_id=1216962684)

새로 산 TV는 신세계였다. 그 거대한 50인치 이상의 화면. 한달간은 적응이 필요했다. 24인치 TV를 보던 우리 가족에게는.
하지만.. 슬슬 방송계는 HD방송의 시대를 열어갔고.. 화면기술은 브라운관에서 발광체로 넘어갔다. 이 프로젝션 TV가 순식간에 구형이 되버리는 순간이였다. HD방송도 지원하지 않고(따로 수신기를 달아야 된다고..) 화질도 떨어지며 그냥 둔중한 거체가 필요이상으로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그랬다. 윈도우즈로 따지면 이건 거의 윈도우 Me 정도의 애매한 포지션이랄까? 그렇게 지금까지 10년을 꾸준히 써온 TV. 2006년 월드컵 때 핑계대고 새 TV 장만한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가족은 꿋꿋이 버텼다. 이젠 버티다버티다 스스로 코마상태에 빠졌다. 수리견적을 알아보니 50만원 이상이라고...; 쓸만하면 더 쓰겠지만 수리비용도 만만찮고 울며 겨자먹기로 새 TV를 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언제나 이런식이였다. 죽을때까지 중간에 바꾸지 않고 기존 TV를 유지한 우리집. 내가 생각해도 참 알뜰하다. 새 시대를 열어갈 TV는 어떤녀석이 들어올까? AMOLED니, 3D니 하는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HD 방송을 볼 수 있는 얄팍한 두께의 LCD TV여도 우리 가족에겐 신세계나 다름없다.

덧글

  • 안녕학점 2010/06/30 16:13 #

    우와, 고생했어요. TV군
  • 고선생 2010/06/30 23:53 #

    그래도 전국민적으로 볼 땐 오래쓴거 맞죠?
  • 홈요리튜나 2010/06/30 16:51 #

    지금은 적은 돈으로도 티비 살 수 있지만....백 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티비를 십 년 넘게 여전히 쓰고 있어요
    와이드가 대세인 요즘이라 옆이 잘려 나오는 채널이 많지만 불만은 없지 뭐람요 흐흐.
  • 고선생 2010/06/30 23:55 #

    저희집에서 제가 서른살 먹을때까지 쓴 TV가 두 대 뿐이니(물론 독일 가기 전에 한국에서 뭔가를 쓰긴 했겠지만) 꽤 오래쓴거 맞죠.
    TV만큼은 신기술이 좋으면 좋았지, 구형 TV는 그 생김새의 미학 말고는 새 TV보다 좋을건 없어서.. 이 핑계로라도 요즘 시대의 물건을 장만할 수 있어 차라리 잘 된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 chelsea 2010/06/30 20:46 #

    저희 집에도 꽤 오래 된 TV가 있어요. Goldstar 브랜드이니 꽤 오래됐죠?
    부모님께서는 디지털 방송으로 바뀔 때 기다렸다가 TV도 교체하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
  • 고선생 2010/06/30 23:56 #

    골트스타.. 금성..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걸로 여태 쓰신다면 정말 굉장히 오래 쓰시는걸요. 90년대 초에 LG로 개명했으니 적어도 8,90년대의 물건일텐데..
  • 黃龍 2010/06/30 21:58 #

    TV가 운명하셨군요 ;ㅅ ; 안타까운 소식...
    저희집 TV는 제가 wii를 사면서 47인치 lcd를 질러서... 본의아니게 2대가 되었어요. 아무래도 콘솔은 큰화면으로 해야 제맛인거 같아요.
    가전제품을 10년이상 쓰는게 쉽지않은거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교체가 가속화되어가는 느낌. 지금 저희집엔 보온기능만 있는 밥통?만이 제 나이만큼 인듯..
  • 고선생 2010/06/30 23:59 #

    어쩌겠어요.. 근데 프로젝션 TV라는 물건이 참 애매한 시기의 애매한 물건이였어요. 덩치 큰 16:9 화면의 브라운관 TV.. hd 방송 지원도 안 하는.. 그냥 비율만 16:9라
    모든 화면은 늘어나서 보이고..(물론 4:3 모드도 있지만 그럴 경우엔 그 화면부분만 타서..) 역시 황룡님은 직장생활도 하시고 게임도 즐기시는 분이니 이러저러 취미를 위한 투자가 원할하셔서 부럽습니다. TV만큼은 늘 새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 osolee 2010/07/01 00:20 #

    앗 오랜만에 보는 저 티비...
    티비는 10년..까진 못 쓰는것 같아요 예전에 어릴땐 10년씩 쓰곤 했지만
    요즘같이 급변하는 전자제품세계속에선...ㅎㅎㅎ

    얼마전에 TV구입했는데 싸고 괜찮은 제품들이 많더라구요 좋은 TV하나 구입하시길 ㅎㅎ
  • 고선생 2010/07/01 01:31 #

    시대가 변하면서 전자기기의 내구성은 점점 떨어진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전에 쓰던 TV들을 둘다 10년 이상씩 버틴걸 생각하면
    왠지 앞으로 살 TV는 그만큼이나 갈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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