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독일 축구계는 갈색폭격기 Chabum(차범근)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전율했던 시기. 동양의 잘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에서 홀홀단신 분데스리가로 건너와 차붐이 시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인상적인 플레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때다. 당시 차붐은 모든 재독 한국인의 자랑이였으며 차붐덕분에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수많은 현지인 팬들이 드글댔으며 아직도 차붐을 존경한다는 독일인 축구선수도 많다. 유명한 미하엘 발락, 올리버 칸 등도 수차례나 차붐을 나의 우상이라 꼽았으며
독일선수가 아닌 마이클 오웬, 루이스 피구 등도 차붐을 자신의 축구영웅으로 칭할 정도다. 당연히 동시대를 뛰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루디 푈러, 전설적인 독일의 축구선수 프란츠 베켄바우어도 차붐에 대한 평가는 입이 마르도록 호의적이다. 독일에서는 차붐의 독일귀화까지 추진했었다니 얼마나 대단했던 선수였는지.
프랑스월드컵 국대의 감독으로, 수원 삼성의 감독으로, 국제전화 CF로, 해설가로서 현재에는 더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는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축구월드스타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 외에는 안중에도 없던 동양에 대한 시선이였는데 그저 분단국가로서의 이미지만이 강하던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이 이방인이 당시의 어떤 유럽리그보다도 뛰어나며 세계최고의 축구리그로 칭송받고 세계의 모든 축구인들의 꿈의 무대였던 분데스리가의 대스타로 성장했으니 차붐열풍은 분명 한국이란 나라 자체의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원동력이였다.
그가 활동하던 동시대에 독일에 있었던 나는(84~90) 그렇게 축구의 팬은 아니였지만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된다. 지금은 영국, 스페인 리그 등에 비해 평가절하되지만 당시엔 전세계 축구의 중심이였던 분데스리가 시절에 열광적으로 즐기지 못했다는게. 89년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은퇴하고 우리 가족은 이듬해인 1990년에 귀국했지만, 그 전까진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인들, 친구들에게 차붐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당시의 꼬마던 나의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열광했으니 지금의 걸출한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이 차붐의 플레이를 보면서 컸고 차붐을 존경한다는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닐터. 혹시 나랑 어울렸던 녀석들 중에 현재 축구선수가 된 친구가 있을까나?
사실 난 축구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고 당시에도 분데스리가 경기장면은 거의 본적이 없다. 차붐의 경기 뿐 아니라 당시의 최고리그의 경기장면들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등한시했던것. 아쉽긴 하다. 그리고 난 차붐 차붐 하는데 도대체 차붐이 누군가 했다. 여기선 절대로 차범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국인일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어릴때는 한국인의 성씨중 '차'씨가 있는지도 몰랐다. 너 차붐 알어? 차붐 네 가족이니? 난 차붐덕에 심심찮게 관심의 대상이였다.
하루는 하도 궁금해서, 엄마, 애들이 차붐차붐 하는데 차붐이 뭐야? 그랬더니.. 자랑스러운 한국인 축구선수라고 하셨다. 어 그래..? 하고 그냥 궁금증의 해소로 난 바로 관심을 껐다. 한국인 축구선수라고..? 그런가보지 뭐. 그가 그토록 대단한 선수였고 세계 선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는건 정작 그의 중심 활동시기에는 몰랐던 것이다.
이제 와서는 그렇게 대단한 시기에 차붐과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는게 그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가 내 아버지와 동갑이라는 것, 나와 동갑내기인 차붐을 꼭 닮은 2세가 걸출한 축구스타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안 건 내가 차붐이란 소리를 처음 들은 때부터 10몇년은 더 흐르고 난 뒤였다.
독일선수가 아닌 마이클 오웬, 루이스 피구 등도 차붐을 자신의 축구영웅으로 칭할 정도다. 당연히 동시대를 뛰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루디 푈러, 전설적인 독일의 축구선수 프란츠 베켄바우어도 차붐에 대한 평가는 입이 마르도록 호의적이다. 독일에서는 차붐의 독일귀화까지 추진했었다니 얼마나 대단했던 선수였는지.
프랑스월드컵 국대의 감독으로, 수원 삼성의 감독으로, 국제전화 CF로, 해설가로서 현재에는 더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는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축구월드스타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 외에는 안중에도 없던 동양에 대한 시선이였는데 그저 분단국가로서의 이미지만이 강하던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이 이방인이 당시의 어떤 유럽리그보다도 뛰어나며 세계최고의 축구리그로 칭송받고 세계의 모든 축구인들의 꿈의 무대였던 분데스리가의 대스타로 성장했으니 차붐열풍은 분명 한국이란 나라 자체의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원동력이였다.
그가 활동하던 동시대에 독일에 있었던 나는(84~90) 그렇게 축구의 팬은 아니였지만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된다. 지금은 영국, 스페인 리그 등에 비해 평가절하되지만 당시엔 전세계 축구의 중심이였던 분데스리가 시절에 열광적으로 즐기지 못했다는게. 89년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은퇴하고 우리 가족은 이듬해인 1990년에 귀국했지만, 그 전까진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인들, 친구들에게 차붐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당시의 꼬마던 나의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열광했으니 지금의 걸출한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이 차붐의 플레이를 보면서 컸고 차붐을 존경한다는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닐터. 혹시 나랑 어울렸던 녀석들 중에 현재 축구선수가 된 친구가 있을까나?
사실 난 축구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고 당시에도 분데스리가 경기장면은 거의 본적이 없다. 차붐의 경기 뿐 아니라 당시의 최고리그의 경기장면들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등한시했던것. 아쉽긴 하다. 그리고 난 차붐 차붐 하는데 도대체 차붐이 누군가 했다. 여기선 절대로 차범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국인일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어릴때는 한국인의 성씨중 '차'씨가 있는지도 몰랐다. 너 차붐 알어? 차붐 네 가족이니? 난 차붐덕에 심심찮게 관심의 대상이였다.
하루는 하도 궁금해서, 엄마, 애들이 차붐차붐 하는데 차붐이 뭐야? 그랬더니.. 자랑스러운 한국인 축구선수라고 하셨다. 어 그래..? 하고 그냥 궁금증의 해소로 난 바로 관심을 껐다. 한국인 축구선수라고..? 그런가보지 뭐. 그가 그토록 대단한 선수였고 세계 선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는건 정작 그의 중심 활동시기에는 몰랐던 것이다.
이제 와서는 그렇게 대단한 시기에 차붐과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는게 그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가 내 아버지와 동갑이라는 것, 나와 동갑내기인 차붐을 꼭 닮은 2세가 걸출한 축구스타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안 건 내가 차붐이란 소리를 처음 들은 때부터 10몇년은 더 흐르고 난 뒤였다.




덧글
당시의 멍청한 한국 정부는 이 축구천재를 썩힐뻔 했었죠.
2010/06/19 00:05 #
비공개 덧글입니다.아이, 비밀님 왜 그러세요 부끄럽게 ㅋㅋㅋ
이 칭찬은 고이 접어서 맘속에 보관하고 생각날때마다 꺼내볼거임!!^^ 아끼고 아낄거야요.
정말 차붐이 요즘 활동했다면, 엄청났을텐데 라는 생각 많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