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by 고선생

한국에서 난 서울사람이였다. 해외여행 경험도 제법 된다. 근데.. 정작 한국에서 서울 및 경기 외 지방은 잘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상하게 그 작은 한국땅인데도 지역차이는 의외로 크며 맘먹고 벗어나보지 않는 한,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지역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초등학생, 중학생 초반정도 때에는 방학만 되면 가족끼리 자가용 타고 국내 여기저기를 돌긴 했다. 이건 우리가족이 독일에서 6년간 살 당시에 여름, 겨울 휴가와 방학때만 되면 자동차 몰고 유럽을 누볐던것과 어느정도 상통하는 것 같다. 물론 독일에서 살 당시엔 부모님은 혈기넘치는 젊은 시절이셨고 다시 한국에 들어올 시기가 정해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시간 날때마다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것이 낙이였고 젊으신만큼 여행의 재미를 충분히 즐기기 위한 요량이셨을거다. 당시 어리던 나는 방학만 되면 난 그저 동네에서 애들이랑 자전거나 타면서, 물총싸움과 축구나 하면서, 동네 쓰레기통에서 공병이나 꺼내다가 Kiosk(구멍가게)에다 갖다주고 젤리나 바꿔먹는 소소한 재미로 지내고 싶었는데 "또 여행이야!"라며 귀찮아하기 일쑤였다. 오랜동안의 자동차이동이 지겨웠고 '박물관'에 들어가기만하면 다리가 아팠다. 그후에 한국에 귀국한 우리가족은 그나마 내가 방학때마다 나름 여유가 있을 초등학교, 중학교 초때까지는 유럽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타고 국내 여기저기를 돌았다. 당신들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시간 있는 동안 가족여행도 소중하고, 국내지리공부, 문화재공부도 시킬 목적으로 산 공부를 위해 다닌거겠지. 독일에서에 비해 턱없이 짧기만 한 아버지의 여름휴가기간이지만 한국땅덩어리도 유럽에 비하면 협소하기 그지없으므로 짧은 며칠간이라도 자동차여행으로 여기저기 방학때마다 여행다니기는 충분했다. 물론 국내여행도 나는 그렇게 재밌지만은 않았다. 어린 마음에는, 더 어릴때 누비던 유럽 나라들에 비해 초라해보인게 사실이였고 한국이 한국이지, 어딜가도 무슨 유명한 사찰이나 문화재 등이 다 비슷비슷해보였고 설악산이니 오대산이니 산도 다 비슷하고.. 유일하게 흥미를 끌었던건 경주의 문화재들.. 동산같이 생긴 고분들? 뭐 그 정도. '공부'라고 생각하니까 흥미가 동하지 않았고 그냥 즐기는것에만 흥미있던 어릴때였다. 부곡의 온천이라든가 전주의 비빔밥, 제주도 전복죽과 흑돼지, 우도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백사장.. 놀고 먹는것들.

그런 시기가 지나고 방학때라고 어디 갈 수도 없고 사교육에 치이며 살게 되는 암흑기를 맞으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국내 딴 곳을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대학때의 MT라든가 애들끼리 당일치기로 갔다오는 경포대 이런거 말고, 맘먹고 내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다른 곳들의 정취를 느끼는 여행 말이다(스물다섯때 1박2일 일탈로 홀로 부산 갔다온거 빼고). 어쨋든 어린시절 많이 다니긴 했으니까, '한국은 그냥 한국이야!'라는 마음에, 해외여행에 훨씬 무게를 둔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말이다. 지금은 아예 다시 독일로 와서 아둥바둥 살고 있다.
그러고보니까 문득.. 한국의 다른 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매력이 있고 지역별로 차별화되는 분위기가 있고 한국다운 자연도 존재할텐데. 다른게 여행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곳을 가는것이 바로 여행.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서울만 벗어나도 여행이였다. 난 그간 서울 외의 지역에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이란 나라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수도 이상으로 과도하게 다른 지역에 비해 초거대도시에 다른 도시 모두를 초라하게 만드는 하이테크도시라는 점도 무시할 순 없다. 5000만 인구중에 1000만 이상이, 그러니까 전체인구의 1/5 이상이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도시. 서울에만 천만이상이니 서울의 영향권인 수도권과 위성도시 주민들 다 합하면 거의 국민의 2/5는 서울과 근처에 사는게 아닐까. 서울 안에 살고 있으면 쉽게 다른 곳에 갈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서울에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근데 이런 등잔밑이 어둡고 '여행' 하면 뭔가 원거리, 다른나라를 먼저 떠올리는건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 자기가 일하는 지역 외적으로 독일내의 다른 도시를 가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여행을 많이 하는 노년층은 경험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행 하면 뭔가 독일과 다른 분위기, 다른 날씨의 지역을 우선 떠올리는게 보통이다. '여행'이 주는 단어의 '특별함 지향'은 어디나 똑같나보다.
내가 지금 독일에서 머물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문득.. 국내여행에 대한 생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젠 독일의 내가 사는 도르트문트 외의 독일 도시들을 굳이 가고싶은 생각도 많이 옅어졌다. 독일에 온 1,2년 새에는 독일순회여행도 많이 했었지만 이젠 독일이 독일이지 하는 생각도 강해진게 사실이다. 한국보다도 훨씬 지역별 특색이 강한 독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살던 시절에도 국내여행 생각이 없었지. 이젠 독일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한국에서도 서울 외의 곳들을 제대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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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emilla 2010/06/10 06:07 #

    저도 독일 살 적에는 부모님한테 하도 끌려 다녀서 '박물관'하면 일단 싫은 생각부터 들어요. 게다가 그 때 다녔던 곳들, 너무 어려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사진만 남아있죠.. 뭐 제 부모님은 여전히 여기저기 잘 다니시지만요.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되면 꼭 경주는 가보고 싶어요. 부산도 가보고 싶고...
  • 고선생 2010/06/10 15:00 #

    박물관은 역시 가장 지루했죠. 이래서 박물관은 볼 줄 아는 나이가 된 후에 가야지, 그 전에 가는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 2010/06/10 06: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고선생 2010/06/10 06:38 #

    원래 외지인이 여행은 훨씬 많이 하는법이죠 ㅎ 본토사람들보다두요.
  • 하니픽 2010/06/10 10:00 #

    우와 정말 대 공감이예요~ 저도 서울권을 거의 벗어난 적 없는 서울촌년인데 그렇다고해서 서울의 곳곳을 잘아는 것도 아니지요;; 말그대로 방안퉁수랄까요...
    그런데 확실히 내가 가고 싶어서 준비하고 간 여행은 정말 즐거웠어요. 남들은 수학여행으로 가서 재미하나도 없다는 경주가 그 장소였는데 전 친구들과 함께 소수로 갔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경주여행이 즐거울 수가 없는거예요~ 그런걸 생각하면 여행이라는건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 한동안 잊고있었는데 고선생님이 이렇게 일깨워주시니 저도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받아서 여행을 가고 싶네요~
  • 고선생 2010/06/10 21:04 #

    저도 서울안에선 그저 익숙한 곳만 다니는 촌놈에 불과했네요. 서울도 중심가나 다녔지 외곽으론 별로요.
    능동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떠나는 여행은 거기가 어디든 임하는 마음은 즐거울거에요. 내가 원하니까, 보고 싶은게 있으니까요. 수학여행도 저도 경주 갔는데 경주 자체의 의미보단 다들 잿밥에 관심있는거잖아요. 불국사 갔을때 단체투어때 다른 여학교에서 온 학생들 없나~ 기웃거리고, 밤에는 선생님들 몰래 이런저런 장난치기 일쑤고.. 그냥 다같은 반 친구들끼리 학교의 교실이 아닌, 다른 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거지 경주라는건 별 의미가 없었어요. 하지만 정말 여행하고자 맘먹고 가는건 참 즐거울 것 같아요. 저도 한번 다시 제대로 가고 싶은 경주네요^^ 경주빵 먹으면서~
  • 펠로우 2010/06/10 10:32 #

    젊을때 국내여행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죠^^;
    아쉬운 대로 전 가끔 인천에 가는데, 서울하고는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 고선생 2010/06/10 21:05 #

    펠로우님은 꽤 자주 인천 가시는것 같던데요?ㅎㅎ 중국음식을 즐기시니까 아무래도 차이나타운도 있고, 여러모로 맘에 드시나봐요.
  • Fabric 2010/06/10 11:00 #

    저는 지난번에 통영 여행한 거 참 좋았어요, 요즘은 의식적으로 두달에 한번 정도는 1박 2일 정도로 날잡고 다른 지방으로 여행다니고 있어요 이제 학생 기간이 얼마 안남았다는걸 깨달아서=_= 지난번엔 전주를 다녀왔는데, 이번엔 춘천으로 갈 거 같네요 제 여행은 관심있는 장소 기행 + 맛집 기행 이에요 그 지방의 유명한 음식들 현지에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구요 ㅎㅎ
  • 고선생 2010/06/10 21:07 #

    그래요 학생시절이란 그래서 좋은겁니다.. 자유가 있고 방학이 있으니까요! 저도 한국에서 대학생 시절에 좀더 방학을 알차게 보냈더라면 하고 후회스러울때가 많아요. 물론 여행도 하고 취미도 즐겼지만.. 더 즐겨야 했습니다 ㅎㅎ 춘천이라면 역시 맛있는 도시죠! 닭갈비에 막국수에.. 저도 춘천 가서 닭갈비골목인가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명불허전+기분탓의 더블콤보로 참 맛있었다는!!
  • 샤유 2010/06/10 11:13 #

    전 포항에서 살다가 현재 수원에 있는데 잠시 포항에 내려갔는데 친구놈이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포항내에 이런 곳이 있는줄 십몇 년이나 살았는데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야 알았다는게 즐거우면서 아쉬웠습니다.
  • 고선생 2010/06/10 21:08 #

    지역마다 그러한 명물이란게 다 있는건데.. 열심히 다니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 홈요리튜나 2010/06/10 12:25 #

    주변을 둘러 볼 만큼 우리의 삶이 여유로워 졌다는 것일까요
    물론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갈 곳이 많아졌기 때문도 있겠지만요..
    여행하면 해외 해외하면 여행~~이었는데 지금은 가까운 곳이라도 갈 곳이 참 많네요^^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도 다시 가고 싶구요..그 때야 구경할 정신 있었나요 애들이랑 놀기 바빴죠ㅋㅋㅋㅋ
  • 고선생 2010/06/10 21:10 #

    여행이란 익숙함의 탈출인것 같아요. 세계여행이 보편화된 지구촌세상이니 왠지 여행이라는 특별함은 외국으로 나가야 할 것 같고..
    그것도 좋은데 익숙함의 탈출이라면 한국 안에서도 자기 살고 있는 곳만 벗어나도 여행이죠. 해외여행만큼의 이색경험은 아니겠지만
    같은 한국인데도 미묘한 분위기 차이를 즐기는것도 재밌을거에요.
  • anicca 2010/06/10 15:27 #

    어렸을때 부모님을 따라다면서 하는 여행은 다들 비슷한거 같아요. 약간의 귀찮음, 맛있게 먹고 뛰어놀고 물장구 치던것 외엔 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죠. 그래도 사진 찍는 분이면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자연, 거리,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 이런걸 담는게 무척 재미있을것 같아요. 길따라 걷고 그저 무조건 보고 음미하다보면 새로운 구상 같은 것도 떠오르기도 하고, 예전에 계획했던 것들이 구체화되기도 하고요. 성인이 되서 가장 좋았던건 '무조건 떠나 보기'가 가능해졌던 건데, 저도 젤 처음 여행한 곳은 '부산'이었답니다. 대학교 1학년때 방학이 되자 마자 떠났던 부산에서 푹푹 찌던 날씨 속에 태종대에 올랐던 오후, 이젠 다 아련한 추억이네요.

    고샘이 한국을 제대로 돌아보고 싶다고 하는 반면, 전 늘 독일이 그리워서 이번 여름에 35일동안 독일 여행을 해요. 첨엔 넘 많은 곳을 계획했었다가 다 지우고 프랑크푸르트, 쾰른, 뒤셀도르프, 노이스, 뤼데스하임을 짧게 돌아서 뮌쉔에 일주일, 칼스루헤를 거쳐 슈바르츠발트 일주일, 보덴제를 거쳐서 베를린 2주일, 요렇게 계획을 했답니다. 고샘 홈피에서 봤던 에쎈의 졸퍼레인을 꼭 가보고 싶긴 한데 월요일엔 뮤지엄들이 거의 휴관이니 날짜를 잘 맞출 수 있을런지 모르겠어요. 그 중 슈바르츠발트에서 심심하게 보낼 일주일이 가장 설레게 기다려진답니다.

    숙소는 페리엔보눙 아니면 레지던스호텔을 빌렸기 때문에 먹을껀 거의 집(?)에서 해먹을 껀데요, 고샘이 만들었던 음식들을 재현^^;해보면 어떨가 생각 중이랍니다. 으하하- 농담이구요, 어쨌든 고샘의 홈피에서 보았던 독일의 여러 도시들의 사진과 풍경들, 맛있는 음식 이야기들, 제겐 너무 고마운 것들이란 이야길 꼭 하고 싶었어요. *^^*
  • 고선생 2010/06/10 21:16 #

    전 여행은 무조건 혼자가 좋아요. 그러한 자유의 시간에 누군가가 개입하고 참견하고 신경써야 된다는게 싫고요.. 배낭과 카메라와 물통이면 오케이입니다. ㅎㅎ
    누군가 정해놓은 루트보단 나만의 뭔가를 발견했을때의 그 희열감은 정말 최고죠. 여행이 주는 선물이랄까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게 그래서 패키지여행입니다.
    패키지는 그냥 박물관 관람할때만 좋은 것 같아요. 유명박물관은 가이드의 설명이 따라주는게 훨씬 재밌고 이해가 편하니까요.
    독일에 오시는군요! 루트를 보아하니 다이나믹합니다^^ 여름이면 좀더 남부의 자연경관에 투자하시는것도 좋을거에요. 여름의 알프스지방은 그만의 맛이 있지요.
    물론 제 기준입니다. 제가 요새 여행테마가 '대자연'으로 바뀌었거든요 ㅎㅎ
    제 입장에선 꽤나 럭셔리한 숙소입니다. 전 무조건 유스호스텔이기 때문에.. 하지만 편히 지내시는게 좋겠죠. 만들어드시는것도 좋지만 제가 만들어먹는
    생존용 요리 말고 독일에 있는 동안 최대한 독일의 식재료들로 독일풍으로 즐기시는것도 좋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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