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먹는 갈비탕 by 고선생

다양한 음식을 해먹고 살지만 사실 가장 뿌듯한건 역시 한식이 맛있게 잘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서양 땅 아래서 제대로 된 한식 접할 기회 많지 않고 스스로 모든걸 만들어야 하는 특성상, 그리고 서양에서 있기에
언제나 그리운게 한국의 맛인 탓에,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한식은 어떤 음식보다도 가장 보람차다.
정말 오랜만에 갈비탕을 끓였다. 추운 겨울, 뜨끈한 국물이 땡길 때가 많은데 무려 갈비탕을 1년만에 해먹는다.

2009년 이맘때엔 베를린에 살고 있었다. 베를린에는 터키수퍼가 흔했고 터키수퍼에서 취급하는 고기는 품질도
괜찮으면서 가격은 일반 독일 수퍼보다 저렴해서 대량구매할 때 특히나 좋았다. 그곳에서 산 갈비를 끓여서
갈비탕을 해 먹어본 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터키수퍼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소매수퍼보단 규모있는 대형마켓의
정육코너에서 소갈비를 사왔다. 갈비탕 스타일로 잘 안 잘라 파는지 어떻게 잘라달라 설명하는 것도 애먹었다.
간만에 보는 갈비들. 한시간 정도 찬물에 피를 빼고 물에 깨끗이 씻어 체에 받혀둔다.
갈비탕 끓이는게 복잡한 요리는 아니겠지만, 난 철저히 '엄마의 레시피'를 고수한다.
씻은 갈비를 우선 펄펄 끓는 물에 겉만 살짝 익을 정도로 데친다. 너무 삶으면 고기의 육즙이 다 빠져나오니까.
겉이 익으면 끓인 물은 버리고 냄비를 잘 헹궈 새로 찬 물을 가득 담는다.
살짝 데친 고기는 응축되게끔 찬물에 잘 씻어서 새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된다.
피 빼고 씻고 초벌로 데치고 또 씻고... 좀 번거로운 순서가 있지만 이렇게 해주는게
불순물을 없애고 깔끔히 고기의 잡내도 없애준다. 정성은 맛으로 보답받는다.
여기다 통마늘을 몇 개 넣어 같이 끓였다. 펄펄 끓으면 불을 중약으로 줄여서 천천히 오래 고아주면 완성.
대략 3시간 정도 푹 고은 것 같다. 갈비는 기름이 많은 부위고 걷어내줘도 기름은 계속 나오니 중간에
자꾸 걷어내는 것보다, 아예 식혀서 위에 굳은 기름을 통째로 떼내 버리는게 낫다. 어차피 이 갈비탕은
이 날 해서 바로 먹으려는게 아니라 다음날 먹으려 준비한거니까. 그리고 갈비탕은 갓 끓여낸 것 보다
끓인걸 한 번 식혔다가 다시 끓인게 더 맛있다는 생각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차림. 먼저 고기와 국물을 담고
파를 수북히. 파가 많은게 좋더라.
얼마만에 먹는 갈비탕 식사인지. 다 차려놓고 나니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고기를 찍어먹을 양념장. 양념장 역시 엄마 방식대로. 간장과 고춧가루, 설탕 조금, 다진마늘, 다진 파를 섞으면 땡.
감동스러웠던 첫 술. 쌀밥에 잘 삶아진 쇠갈비에 배추김치. 이게 그렇게도 특별한 음식이였더냐...ㅠㅠ
좀 귀찮은 과정을 거쳤지만 덕분에 국물은 냄새 없이 깔끔하고 진국이다. 김치국물같은거 따로
부어먹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소금과 후추 그리고 파를 듬뿍 넣으면 그만이다.
얼마나 만족하며 먹었으면 안하던 짓거리, 빈그릇 샷까지...;
맛있는 한식을 차려먹는게 흔한 일이 아니다보니까.. 더군다나 갈비탕은 1년만의 감동이였다.
피 빼는거부터 시작해서 번거로운 과정도 있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인내의 조리지만
그런 장시간의 국물 우러남의 깊은 맛 때문에 더 매력이 있는 갈비탕.
내가 사는 집이 따로 관리비 더 안내고 전기세, 물세 한달 고정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사실 이런류의 고기국 중 갈비탕보다 훠어어얼씬 더 좋아하는게 우족탕, 도가니탕같은거다.
국물은 비할바 안되게 훨씬 진하고 맛있고 우족과 도가니도 살코기보다 더더욱 맛있다.
..둘다 독일 정육접에선 발견된 바 없다...-_-
역시 고기부위의 다양성은 한국이 세계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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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슈 2010/02/03 01:38 #

    감동스럽네요. :)
    저도 파 많은 거 좋아해서 국물이 덮이도록 부어 먹어요.

    정말 맛있게 드셨나봐요~
  • 고선생 2010/02/03 17:53 #

    네 정말 맛있었어요. 아무래도 자주 해먹긴 힘든 음식이다보니 더 그렇죠.
    더군다나 전 이걸 1년만에 먹은거라구요.
  • googler 2010/02/03 02:49 #

    ㅎㅎㅎㅎㅎㅎㅎ 안 하던 짓까지 하셧다니 사진학습 더 하신게로군요. ㅋㅋ
    근데 그집 쌀 정말 좋군요. 사진술인지 아님 실제 쌀 퀄러티인지 정말 좋은쌀로 보임다.
    갈비는 어디가서 사는지 도체 저는 여기선 그런 게 안 보여요,
    일단 여기 갈비 보니 희망송송, 독일이 갈비 팔면 뭐 여기도 갈비 팔것지요.
  • 고선생 2010/02/03 17:55 #

    쌀은 정말 품질 좋습니다. 일본의 '하루카'라는 브랜드의 초밥용 쌀이죠.
    서양에서 우리가 먹기엔 '초밥용 쌀'이 가장 품질이 좋을겁니다.
    여기선 갈비가 갈비라고 표현 안 하고 '스프용 고기' 즉 국물내기용 고기라고 팔아요.
    평소 고기 부위별 모양을 보면 알기에 딱 보고서 저게 갈비구나 하고 알아둔거죠.
  • 한다나 2010/02/03 07:22 #

    우오 갈비탕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쌀도 고슬고슬해서 정말 맛나보여요....
    확실히 베를린이 크고, 외쿡인들도 많이 거주해서 재료가 다양한가봐요 하악!
  • 고선생 2010/02/03 17:56 #

    베를린이 독일 전역의 도시 중에서 외국인으로서 살기엔 정말 최고의 도시같아요.
    아 정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이젠 그럴 수 없는 현실...
    도시도 크고 볼거리 많고 자연도 많고.. 물가 싸고.
  • 하니픽 2010/02/03 07:51 #

    감동적인 갈비탕이네요~ 이걸 직접 만드셨다니 놀라워요!!! 무엇보다 살짝 데쳤다가 찬물에 담가 응고시키고 다시 삶는 방법이 인상적이예요~ 고기의 불순물이 제거되서 깔끔한 국물이 나올 것 같거든요!! 저도 다음번에 갈비탕을 만들 때는 이 방법을 써야 겠네요^^
    갈비탕은 맛이 좋은데 3~4시간 계속 고아야 한다는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여름에 하면 집 온도가 올라가서 죽음이지요 ㅠ_ㅠ 한여름 베이킹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겨울에하면 집이 훈훈해 지니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추운날 베이킹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답니다~
  • 고선생 2010/02/03 18:00 #

    엄마의 레시피는 최고에요! 라고 전 생각한답니다 ㅎㅎ 근데 별로 이렇게 해 드시는 분 못봤어요. 엄마가 깔끔한 맛을 지향하시다보니.
    오래도록 고아야 맛있지만 그만큼의 인내가 필요하죠. 근데 여름엔 그다지 이런 음식 잘 안 찾게 되요. 덥기도 하지만 여름엔 고기 국물 방치해두면
    상하기도 일쑤니까요. 그냥 한끼 먹고 끝내버리는 삼계탕같은데 그래서 더 적절한 듯.
    전 어차피 주방이 방에서 떨어져있는 공동주방이니까 방이 훈훈해지지도 않네요 ㅋ
  • bluexmas 2010/02/03 08:02 #

    우리나라에서 찜갈비로 먹는 걸 외국에서는 잉글리시 컷이라고 하는데, 그게 단지 미국얘긴지 세계적으로 통하는 얘긴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맛있어보입니다. 쌀도 좋아보이네요 +_+
  • 고선생 2010/02/03 18:01 #

    의외의 이름이군요. 영국에 갈비 관련한 요리가 있는걸까요?
    간만에 맛있게 잘 먹었네요. 쌀밥에 고깃국은 역사깊은 한국인의 맛이죠.
  • Fabric 2010/02/03 08:17 #

    ㅠㅠ 열두시에 고선생님 블로그에 들어온 제가 원망스럽네요 오우.... 빛깔 좋은 갈비탕 :)

    아, 아무래도 여기 친구들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두어번 해야 할 거 같은데 뭐가 좋을까요~?
    우엉이랑 단무지가 있어서 김밥을 생각하고 있고... 호떡 믹스를 한국에서 가져온 터라 만들것도 같고..
    불고기, 잡채, 떡국, 군만두 정도가 메인 디쉬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고선생님 생각을 들려주세요 ^^
    두세번은 초대할 거 같아서 네가지 음식을 다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아무래도 유럽에 두달밖에 살지 않아서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모르겠답니다 ㅜ_ㅜ
  • 고선생 2010/02/03 08:51 #

    말씀하신 음식들 다 하실 자신만 있으시다면야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라면 그렇게 거창하게 못 하겠는걸요..ㅎ 한식이 좀 손 많이 가는 음식인가요? 특히 잡채.. 건더기 준비만 해도 살떨리는데요. 호떡 좋네요. 굉장히 동양풍의 군것질거리이고.. 김밥도 괜찮네요. 김밥은 이미 유럽에서 꽤나 친숙한 '일본음식'으로 퍼져있으니까요. 꽤 좋아하기도 한답니다. 너무 많은 속재료 넣으실 필요 없고 퓨전식인 참치김밥이나 가장 무난한 소고기김밥도 좋겠네요.
    불고기는 아마도 한국음식중에 잡채와 더불어 가장 인기있을겁니다. 그 불고기양념 맛을 좋아하구요. '코리안바베큐'는 한식중 가장 세계인에게 잘 다가가는 음식이잖아요. 다만 떡국은 '떡'의 그 쫄깃한 느낌은 여기선 굉장히 낯설기 때문에 신중히 생각하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그 느낌을 꺼려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국물음식을 하신다면 차라리 떡을 빼고 쌀을 개어 죽으로 걸쭉히 만드는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요. 전 예전에 고추장찌개를 만든적이 있는데 반응 나쁘지 않았어요. 최대한 맵지 않게, 쇠고기국물베이스에 쇠고기 건더기와 애호박, 양파, 버섯 등 풍부한 건더기를 넣은 것이 매콤달콤한 스튜같다고 좋아하더라구요. 고추장에 된장을 조금만 섞어서 푹 찌듯이 끓여줘야 맛이 나죠.
    그 외에 생각나는건 계란말이도 재료비 대비 만족스러울 것 같은 음식이구요. 전류도 좋아할거에요. 생선전같은거. 아니면 산적. 서양인들이 한국의 전을 좋아한다고 들었거든요. 한국의 감자전과 매우 흡사한 요리인 뢰스티도 스위스의 음식으로 독일에서도 인기고 말이에요.
    메인식사로 짜장면은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요. 뭐 한국음식이라 봐도 무난한 음식이죠 이젠. 춘장 구하셔서 인터넷같은데서 레시피 참고하시어 만들면 반응 좋을 것 같습니다. 저 땅꼬마 때 독일서 살던 시절, 꽤 큰 한인식당에서 짜장면이란 음식을 난생 처음 접해봤었는데, 그 옆에 독일어로 해석해둔 음식명 보고 놀랐었죠. 'Koreanische Spaghetti'..ㅎㅎ
    저도 가서 같이 도우며 오랜만에 '접대용' 음식 만들어보고 싶은 기분도 드네요^^ 행운을 빌어요.
  • 아슈 2010/02/03 18:03 #

    다른 분 블로그지만, 저도 첨언하자면..
    단무지는 식감 자체가 그리 환영받지는 않으니 오이를 살짝 절여서 사용해보세요.
    그리고 외국애들은 '김' 자체를 낯설어 한답니다. (아예 못먹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나물 몇가지 해서 부페식으로 펼쳐놓고 '알아서' 비빔밥 해먹도록 했었어요.
    불고기 + 비빔밥 + 물김치 한 적도 있고
    잡채와 불고기, 간단한 전도 괜찮아요~
    오이선이나 구절판같은 거 한 적도 있는데 -> 이건 난이도가 높으니 패스;;;
  • 풍금소리 2010/02/03 08:32 #

    정말 맛있게 끓이셨군요.저도 당장 제 방식을 바꿔 저렇게 한번 끓여보아야 겠슴당.

    육즙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하려고 살짝 데치는 건 유용한 팁이네요.보통 찬물에 핏물빼고 그냥 고듯이 푹...삶는데...그래서 일류요리집 갈비탕을 제 거 보다 식구들이 잘먹나봐요.(1인분 6000원)
    그리고 양념장,일품이었어요.엄마 레시피를 아들(맞죠?)이 이어받다니...이거이거 상당히 고무적인데요.ㅋㅋ
  • 고선생 2010/02/03 18:03 #

    갈비탕만큼은 우리집 갈비탕이 사먹는거 안부러워요. 물론 업소의 거대한 솥에 아낌없이 재료 많이 써서 우러내는 진국도 좋지만 정말 깔끔하고 좋은건 우리집 갈비탕도 훌륭하답니다. 좀 귀찮지만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일말의 냄새나 불순물 없이 깔끔하게 된답니다.
    양념장도 엄마의 레시피지만.. 양념장 다 이렇게 만드는거 아니였나요?
  • december 2010/02/03 08:57 #

    개인적으로 갈비탕은 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데
    이건 어쩜 저도 만들고 싶어지는데요 큰 냄비를 사야겠습니다 ㅎㅎㅎ
  • 고선생 2010/02/03 18:04 #

    고기 양이 일정하더라도 가정에서 하는 수준이야 냄비가 더 작고 더 크고에 관계없이
    국물의 진하기는 똑같을 텐데 큰 냄비가 좋죠.ㅎ
  • 잠자는코알라 2010/02/03 09:57 #

    제대로 만드셨네요 ㅠ.ㅠ 파 뿌려놓은 사진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여기서도 제대로 만들어먹기 힘든 음식이잖아요. 고생하셨어요!!! 진짜 고기도 좋고 맛있어 보여요.. :)
  • 고선생 2010/02/03 18:05 #

    고기는 오히려 한국에서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엄연히 갈비탕에 최적화해서 잘 잘라주고 여기보다 기름기도 좀 덜한 것 같아요.
    여긴 기름이 엄청 덕지덕지.. 제가 다 떼낸거에요. 코알라님도 감기 떨어지라고 뜨끈한 고깃국 어떠세요? :)
  • cleo 2010/02/03 10:22 #

    숟가락에 밥 한술, 그 위에 파 한 쪼가리 붙은 갈비살, 그 위에 김치...빛깔도 너무 곱고 맛나 보여요~;)
    그 아래 동동 떠있는 파들의 기하하적 무늬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쩜 칼질도 저리 깔끔하게 하실까!?!?
    ( 나 아침 먹고 왔는데... 그 밥 숟가락 그대로 내 입으로 가져가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ㅋㅋㅋ )

    고선생님은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놓아도, 북극의 빙산 떨어져나온 어느 얼음판 위에 있어도,
    아라비아의 사막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어도...먹고사는데는 아무 이상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닷!
    아...빨리 '한식당' 차리시란 말이에요~ㅠㅠ ㅠㅠ ㅠㅠ

  • 고선생 2010/02/03 18:09 #

    기하학적 무늬까지..ㅎㅎ 너무 미술관 기분 내시는거 아녜요 ㅎㅎㅎ 감상포인트가 민망스럽습니다~
    (아침 어떤거 드셨나요? 사실 전 아침으론 밥 잘 안 먹었는데 독일선 두 끼 먹으며 사니까 상관없어요 밥도)

    시베리아로 가든 북극으로 가든 사막으로 가든 그곳의 식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즐거운 일일수도 있겠네요.
    다만 캐스트어웨이처럼 정말 떨궈져버린 상태라면 절망이겠죠. 먹고 사는것도 식재료가 수반되어야..;
    한식당.....; 지난번에 괜히 얘기 꺼낸것 같기도 하고;; cleo누님과 같이 터 보러 다녀야 되나요? :)
  • 우와 2010/02/11 18:43 # 삭제

    너무 맛잇어보여요!!!더군다나 옆에 잇는 김치도 맛잇어보이네요!!오늘저녁은 갈비탕을 먹고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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