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2의 고향, 프랑크푸르트 근교 슈타인바흐Steinbach by 고선생

그간 포스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듯, 난 어린시절을 독일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외국지사발령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내 나이 4살이 되던 해 독일로 떠나
햇수로는 6년, 정확히는 5년 반 여의 세월을 독일서 보내고 귀국했다.

내가 다시 독일로 와서 공부할 것을 예상했다면 아예 나는 독일에 두고 오는건데
하는 농담도 가족끼리 하곤 한다. 만약 그랬다면 그거야말로 굉장한 나비효과 아니였을까.
지금의 나는 없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되어 있을텐데.

어떻게 생각하면 후회가 들긴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며 한국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맺은 수많은
인연의 끈들과 추억들을 생각해보자면 정답이란건 없는것 같다. 그 때 독일에서 계속
머물게 된 나였다면 이글루스도 모르고 살았을거고 다양한 블로그이웃분들간의 즐거운
커뮤니케이션도 없을테니까 ㅎㅎ..
(이 멘트.. 뭔가 스스로 굉장히 민망하고 재수없는데? ㅋㅋㅋㅋㅋ)

나에게 독일은 제 2의 고향이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뚜렷해지기 시작할 나이부터
생활하던 곳이기도 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다닌, 인격형성의 시기를 보낸 곳이기에
나에겐 더욱 각별하다. '태어난 곳'이 아닌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을 고향의
기준으로 본다면 나의 고향은 자신있게 독일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았다고 누누히 밝혔지만, 정확히 행정구역상으로 나눠보자면
프랑크푸르트의 근교 소도시인 슈타인바흐(Steinbach)다.
대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근교에는 슈타인바흐 말고도 에쉬본, 슈발바흐 등 여럿 소도시들이
있는데 대부분 그곳들은 자체도시의 느낌보다는, 그곳 주거민들도 상업활동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지만
이 소도시들은 생활 및 주거 등에 최적화된 도시들이다. 독어로 치자면 Stadt가 아닌 Dorf인 셈.
프랑크푸르트의 영향권 안이기도 하고 S-Bahn(광역전철)도 연결되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일산, 서울-과천, 서울-분당 그러한 관계 정도..?

2005년 유럽여행 당시 짬을 내어 나의 고향이라 할 만한 이 곳을 찾았다. 아마 유럽여행 중
독일 안에서 슈타인바흐를 찾는 사람은 전세계에서도 드물겠지. 나에겐 특별한 추억의
장소인 만큼, 하루 시간을 내어 내 어린시절을 지낸 이 마을을 찾았다.
슈타인바흐 마을 중심부에 있는 심볼표지판.
파란 바탕에 양쪽으로 물이 흘러나오는 우물(?)의 그림이 이 마을의 심볼마크로,
슈타인(Stein)은 돌, 바흐(Bach)는 냇물을 의미한다.
돌시냇물이라는.. 직역하자면 그런 의미고, 지하수를 의미하는 듯.
이러한 분위기가 뿜어나오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조용한 마을이다. 이곳은 주택가쪽이고
수퍼마켓, 빵집, 술집 등등 어느정도의 작은 번화가도 있긴 하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은 유치원이란 뜻. 어렸을 적 다닌 유치원 근처.
이곳이 나의 첫 사회활동이 시작된(?) 유치원이다.
백인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처음엔 낯설어서 매일매일 울었던 기억도 나지만..
친한 친구들도 사귀고 독어를 습득하면서 활발히 지내게 되었다.
유치원의 마당. 흙장난 하기 좋은 부드러운 땅과 놀이시설 등이 세워져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철로 만든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가 아닌,
통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같은 따위의 소박한 구조물들이 대다수.
유치원 앞에 있는 작은 연못.
유치원 밖으로 조성되어 있는 작은 놀이터. 어렸을 때 왔던 때랑 변한게 전혀 없다.
어렸을 땐 이 곳이 굉장히 넓게 느껴졌는데.. 다 커서 다시 와 보니 아담한 넓이...
저 꼬마가 장난감 차 타고 다녔던 저 길을 나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는데...
유치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초등학교(Grundschule).
이 곳에서 나는 2학년과정까지 마쳤다. 이후 한국에 와서는 한국 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
우리나라 학교들은 학교 건물 앞이 모래바닥 운동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 곳은 전혀 다르다.
학교 앞은 널찍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운동장 개념은 아니고 그냥 쉬는 시간에 나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공간일 뿐. 초등학교이다보니 이런저런 놀이거리들이 설치되어 있다.
아아.. 이 뜀틀은.. 내가 2학년 올라가던 해에 새로 설치한 건데.. 밑에 다치지 말라고 고무바닥과..
10몇년이 지나서 와봐도 그대로다. 그 때의 기분을 느껴보며 웃샤!
내가 수업을 받았던 교실.. 아무 교실이나 찍은 거 아니다. 정확히 내가 공부했던 바로 그 교실..
방학 때라 썰렁하지만... 여러 큰 탁자를 교실 여기 저기 배치하고 아이들은 몇명씩 모여 앉아
수업을 받는 형태다. 저 칠판에다 '한글'을 써주니 신기해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곳은 체육관. 한국에도 체육관이 있는 학교가 있지만 여기선 야외 운동장이 아닌,
체육활동은 언제나 실내 체육관에서 한다. 그래서 학교마다 당연히 있는게 체육관이고..
이곳은 100m 달리기 트랩. 체육관 건물 뒷편으로 있는데, 이 곳에서의 수업은 단 한 번 뿐이였다, 나는.
내가 살던 아파트단지 근처. 길의 오른쪽으로는 단독주택들이, 왼쪽으로 아파트단지가 시작된다.
단지에서 나오면 바로 이 길을 횡단하게 되는 것.
언제나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면서 지나쳤던 맞은 편 주택. 이 집 아저씨는 멋진 캐딜락을 한 대
가지고 있었고, 틈만 나면 개인 차고에서 차 끌고 나와서 뭐 고치고 개조하고 그런 소일거리를 했는데..
10몇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캐딜락은 여전하고, 고치다가 놔둔듯한 흔적까지 그대로였다..

정말 추억속의 상황 그대로인게 신기하다.
아파트 단지.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같은 형태는 아니고 공원같은 느낌이다.
한국에선 제일 흔한게 아파트지만 여기선 아파트, 또한 동일한 아파트가 여러채 있는
아파트 단지는 그리 흔한 게 아닌데 여긴 아파트 단지가 있다.
여기가 나와 우리 가족이 보낸 아파트. 18동. 열쇠가 없으니 들어갈 수는 없지만..
정말 나에겐 고향집을 방문한듯한 크나큰 감동이였다.
이 집 앞에 딱 선 순간, 머리에 바로 든 생각은..

마치, 기나긴 여행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그런 기분?
아파트 뒤편으로 해서 단지를 벗어나면...
아파트 단지 뒤편으로 드넓은 밀밭이 펼쳐져있다. 어린시절, 이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친구들과 뛰어놀던 곳이다.
밭 사이사이로는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나있다.
드넓은 밭. 왼쪽으로는 옥수수도 심어져있다.
어린시절, 언제나 이 밭의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가보지 않았는데
언젠가 친구들이랑, 이 밭의 끝을 보자! 고 하여 자전거를 타고 끝까지 달려보았다.
밭의 끝지점에는 놀이터가 있는 넓은 잔디공원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에게는 그야말로 대발견이였다. 그 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이 곳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어린시절엔 줄곧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이 곳을 걸어가자니 시간이 꽤 걸리긴 했다.
하지만 그 넓은 밭 안에서도 마치 엊그제 가봤던 양, 전혀 헤매지 않고 한번에
목적지까지 갔다 왔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얼만큼 또렷하면...
푸른 하늘과 정다운 전원의 마을을 뒤로 하고 슈타인바흐의 방문은 끝났다.

정말 놀라운 것은, 어린시절 당시와 비교해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의 모습. 덕분에 난 더더욱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유럽은 어느 곳이든 그 모습이 잘 바뀌진 않는다.
한국은 1년새도 확확 바뀌는게 너무도 일반적이지만..
내가 나중에 귀국한다면 굉장히 낯설게 뻔하다.


덧글

  • chimber 2009/09/12 01:26 #

    정말, 추억 속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유치원, 학교와 그 풍경이라니.. 독일에 제2의 고향을 갖고 계셔서 더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전 고향이 비교적 시골(강릉)인데도 지금 어렸을 때 노닐던 곳을 가면 예전 모습을 찾기가 힘듭니다. 운이 좋으신 것 같아요.
  • 고선생 2009/09/12 19:36 #

    강릉만 해도 강원도권에선 나름 대도시 아닌가요? 어쨋든 그런건 상관없이 한국은 환경변화가 너무 잦은 나라라서요. 그 변화의 정도는 대도시일수록 극심하죠. 어찌 생각해보면 유럽은 변화가 더디다기보다는 이미 충분히 갖춰진 환경이라서 라는 이유도 설득력이 있는듯 합니다.
  • 궁그미 2009/09/12 15:06 # 삭제

    Geschwister-scholl-schulle는 슈발박에도 있던데요...
    독일은 이름 똑같은 학교가 많나요?
  • 조신한튜나 2009/09/12 15:24 #

    경치 우와,.,,,이런 좋은 곳에서 살았던 과거의 고선생님에게 질투나요 @_@
    그러고보니 제가 살던 곳도 너무 변해버렸네요...도로확장한다고 나무도 베어버리고 강변에 깔렸던 따뜻한 돌들은 차가운 시멘트로 포장하고^^;
  • 고선생 2009/09/12 19:38 #

    즐거웠던 어린시절이죠..ㅎ 저를 비롯한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좋았던 시절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공사판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으면 좀이 쑤시나봅니다. 문제는 균형발전은 커녕 이미 큰 도시들만 유독 더 뜯어고치기만 하죠.
  • cleo 2009/09/12 22:36 #

    지평선까지 내려와있는 구름,
    고흐의 그림같은 밀밭(그렇게 스산해 보이지는 않지만),
    옥수수밭과 밀밭 사이로 쭈욱 뻗어있는 도로...
    너무나 아름다워요.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건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부럽네요..;;
    ( 학교 벽면의 그림들도 너무 귀여워요.^^ )
  • 고선생 2009/09/13 16:56 #

    우리나라사람으로서 일반적이진 않은 소중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기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독어도 습득했었고.. 물론 한국 와서는 거의 다 까먹어버렸지만 아직도 네이티브 발음을 유지하고 있구요. 유학 와서 어학과정에선 어느 반을 가든지 제 발음이 최고라 평해주더라구요 ㅋㅋ 서양권 애들보다도!
    그리고 저렇게 탁 트인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어린날의 감수성을 추억해보자면 그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그곳에서 성장했기에 아직도 서양사람같은 정신적 기질이 남아있어요.
  • Semilla 2009/09/13 00:12 #

    저도 유년 시절을 Frankfurt (Berkersheim) 에서 보냈는데 괜히 반갑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랑 비슷해보이는데 학교 건물은 훨씬 좋군요. 저도 밭길을 자전거 타고 따라라곤 했었어요. 저도 언젠가 그 곳을 다시 가보고 싶은데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 Google Earth로 찾아보면 낯설더라구요.
  • schtepan 2012/09/06 19:47 # 삭제

    사진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저도 이곳아파트에서 5년동안(1993년~1998년) 거주 한 적이있어서.... 많이 생각납니다.
    아파트내 가르텐 갈라지는 지점에 있는 큰돌은 평생 잊어지지않는 물건인데,, 처음 자동차를 사가지고 뒤로 차돌리다가
    글켜서 일요일날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카센터에 가서 수리한적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준차라 아무도 모를게 뒷처리 하느라고..
    킨더가를텐은 직장선배 작은딸이 다니던곳이라 가끔 내가 데리러 간적도 있어고...
    벌써 오래전일이지만, 5년동안의 오래 머믈던 곳이기에 사진을 보니 척 알아 보겠더군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 고선생 2012/09/06 20:50 #

    하하 93년이라면 제가 귀국후 3년 뒤에 가신거군요. 같은 동네였다니, 게다가 같은 아파트라니, 그것도 5년이라니 ㅎ 저희 가족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는 한국 회사 지사발령같은 경우로 가신 모양이군요.
  • schtepan 2012/10/28 15:13 # 삭제

    그렇습니다. 그아파트는 (주)인켈에서 3채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혹시 고선생님 아버님이.... 인켈맨 아니셨는지요?
    그럴가능성이 80%이상 되네요.... 맞다면 아버님 성함이??????
  • 고선생 2012/10/28 21:13 #

    아뇨 삼성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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